조훈현9단 진로배 3連覇의 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조훈현(曺薰鉉)9단은 진로배를 하루 앞둔 20일 감기에 걸렸다.지난달 일본대회때 이창호(李昌鎬)7단은 도일직전 위염에 걸렸었다.스트레스 때문인데 연승을 거두자 씻은듯 나아버렸다.이창호가 4연승하는 동안 曺9단은 말했다.『창호덕분에 꿈같은 휴가를 보냈다.그렇지만 앞일이 걱정이다.』 어느덧 한국바둑은 국제무대에서 이기면 본전이고 지면 망신일 정도로 커버렸다.그 한국바둑을 이끄는 두개의 축이 조훈현과 이창호다.이창호는 주어진 역할을 다했는데 조훈현은 과연 제몫을 할까.
이로 인한 중압감이 감기를 몰고왔다.이창호와의 사제전쟁에서 연전연패하는 바람에 컨디션도 최악이었다.그리하여 21일 중국 녜웨이핑(섭衛平)9단과의 바둑은 중반무렵 이미 엉망이 돼버렸다.하늘로 솟는 재주가 있어도 회생불능이었다.그런데 그 바둑이 뒤집어졌다.국후에 曺9단은『용궁갔다 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섭은 대국장의 찜통같은 더위와 초읽는 여성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그러나 섭의 어이없는 역전패는 曺9단에 대한 심리적 부담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89년 잉창치(應昌期)배에서의 패배이후 그는 曺를 이길수 없는 심리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22일의 린하이펑(林海峰)전,그러니까 최종결승전에서 曺9단의 컨디션은 점점 좋아졌다.曺9단은 1분초읽기 속에서도 두번의 빛나는 묘수를 두어 압승했다.
〈그림1〉의 白1과 3이 기막힌 침투의 맥점.TV중계용 라이트에 둘러싸인 무더운 대국장에서 1분초읽기에 몰리며 이런 묘수를 찾아낸 건 행운일까,실력일까.응원차 미국에서 건너온 차민수(車敏洙)4단은『큰 승부는 운이다.그러나 실력이 없으면 운도 따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장내를 감탄시킨 두번째 묘수가〈그림2〉白1의 절단.黑은 A로 잡을수 없다.白B로 끊고 C로 되몬다음 D로 나가는 연단수에 뒤쪽 黑대마가 잡히는 것이다.이런 순발력으로 曺9단은 국제바둑계에서 무 적의 황제가 됐다.국내에선 이창호에게 밀리고 있으나 국제무대에서는 단연1위다.우승한후曺9단은 오랜만에 미소지으며 이렇게 말했다.『힘들었다.창호의 4연승을 우승으로 연결시킬수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 세계대회연속 8회 우승의 위업을 이룩한 한국바둑의 연승행진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수 있을까.일본과 중국의 관계자들은『이창호 혼자로는 힘들것이다.그러니 당분간은 조훈현이 쇠퇴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朴治文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