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키드먼도 옷 빌려 입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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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을 하기 위해 막 옷장을 열어 젖혔다고 해보자. 이때 비참한 기분이 든 적이 있는 여성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했을 것이다. 예쁜 옷이 많은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어떨까 하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정작 옷을 빌려 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영미권은 다르다. 요즘 10대와 20대 여성들은 거리낌 없이 친구에게 옷을 빌려 달라고 한다. 부탁받은 친구도 기꺼이 빌려주는 편이다. 옷 돌려 입기, 혹은 빌려 입기(wardrobe sharing, trading clothes)가 하나의 패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서로 옷을 빌려 줄 정도로 친한 니콜 키드먼(좌)과 나오미 왓츠(우)

최근 영국과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는 공교롭게도 거의 동시에 이 유행을 보도했다, 영국의 ‘텔리그래프’는 22일자, 미국의 ‘보스턴글로브’지는 17일자로, 양국에서 부는 옷 돌려 입기 열풍을 다뤘다. 예전에도 친구들 사이에 간간이 옷을 빌려주는 경우는 있었지만 지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흔한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젊은 여성들이 비싼 옷을 사기 힘들어서 그렇다고만 볼 일도 아니다. 부유층 자녀들은 물론 헐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도 옷 돌려 입기가 대세다. ‘텔리그래프’는 지난해 8월 파티에 참석하려던 미국 영화배우 나오미 와츠도 친구 니콜 키드먼에게 노란 꽃무늬 장식의 프라다 원피스를 빌렸다고 전했다. 영화 한 편당 1000만달러에 달하는 출연료를 받는 니콜 키드먼 역시 왓츠에게 종종 옷을 빌린다.

친구, 더 나아가서 주변 사람들에게 옷을 빌려 입는 일이 유행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보스턴글로브’는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분교 섬유의류학과의 마가렛 루커 교수의 말을 빌어 세 가지 이유를 꼽았다. 우선 패션의 유행 주기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 데다가 유명 디자이너의 괜찮은 옷들은 날이 갈수록 비싸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낡은 듯한 옷을 선호하는 빈티지(vintage)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다.

기숙사나 여학생 클럽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옷 돌려 입기'가 사회적으로 유행이 된 데에는 또 다른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과거 옷을 빌려주기를 꺼리던 사람들의 태도 변화다. 이들은 누군가 옷을 빌려 달라는 부탁을 하면, 자신이 패션 리더라는 점을 공인받았다고 여긴다. 심지어 옷 빌려달라는 부탁을 얼마나 많이 받는지를 두고 내기를 하기도 한다. 인터넷 상에서 옷을 빌려주고, 빌려달라는 광고나 사연도 늘고 있다.

물론 옷 돌려 입기에는 당사자간에 반드시 지켜야 할 예의도 있다. 일단 빌려 입고 나서는 반드시 원래 상태로 깨끗히 세탁한 다음 돌려줘야 한다. 상대방이 잊었을 것이라고 보고 돌려주지 않는 것도 결례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에 자신의 옷장 앞에서 한숨짓는 대신 거리낌 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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