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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어린이책] 거인 소녀가 지렁이를 만났을 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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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거인 부벨라와 지렁이 친구
조 프리드먼 지음, 지혜연 옮김, 주니어랜덤
104쪽, 8500원, 초등 저학년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재미있는 책이 좋아’시리즈의 첫 권이다. 이 무렵의 어린이들은 그림책에서 본격적인 이야기책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책을 권할 때는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 교훈을 담은 책을 억지로 권하다 자칫 책을 싫어할 우려가 있어서다. 자유로운 상상을 바탕으로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꾸며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기획 의도를 충분히 살렸다 하겠다.

특이하게도 주인공은 거인 소녀와 지렁이다. 거인은 동화에 자주 등장하지만 거인 소녀는 허를 찌른다. 지렁이도 마찬가지다. 우화에선 온갖 동물이 사람처럼 말하고 생각하며 활약을 한다. 그렇지만 말하는 지렁이는 대부분 처음 만날 게다. 이 어울리지 않는 짝꿍은 부벨라의 정원에서 처음 만난다. 땅에서 쏙 고개를 내민 지렁이가 누워 있던 부벨라에게 “너, 발냄새 정말 지독하구나!”하고 말을 건네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보기만 하면 놀라 도망칠 정도인 큰 몸집 탓에 외롭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부벨라는 깜짝 놀란다. 여태 먼저 말을 걸어온 ‘사람’도 없었고 그처럼 기분 나쁜 말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 지렁이는 씩씩하고 영리하다. 젠체하고 살지 않기에 그냥 ‘지렁이’라는 이름에 만족하며 산다. 또 자신을 겁내지 않는 것을 의아스러워하는 부벨라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이 나보다 커. 만약 나보다 큰 것들에게 말 붙이기를 겁냈다면 난 계속 입을 다물고 살아야 했을걸”이라며 큰소리친다.

부벨라는 신기한 지렁이에게 마음을 열고 차 모임에 초대한다. 몸 단장이며 집안 청소에 부산을 떨고 지렁이가 좋아할 ‘진흙 파이’까지 만든다. 이윽고 지렁이와 친구가 된 부벨라는 성냥갑에 지렁이를 담고 모험을 떠난다. 해변에 놀러가 모래성 쌓기를 하는가 하면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난다. 물을 싫어하고 하늘을 나는 것을 겁내는 지렁이는 친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같이한다. 어린이들이 자연스레 우정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지렁이의 충고는 곰곰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비슷비슷한 아이들끼리는 언제든 놀 수 있잖아. 아마 오늘이 거인과 놀 수 있는 첫 번째 기회가 될 거야! 네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놀이가 있는지 한 번 궁리해 봐.”
 
해변의 아이들이 자기를 싫어할까 싶어 다가가지 못하는 부벨라에게 하는 말이다. 긍정적 사고의 힘을 그대로 보여준달까. 부벨라와 지렁이가 풍선을 타고 찾아간 할머니의 말씀도 어린이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마법은 마음속에 들어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지”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단다”처럼 정신 또는 마음의 힘을 일깨워주니 말이다.

 지은이의 부모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장애인이라 한다. 그는 자기 부모들이 장애가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할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 ‘부벨라’라는 특별한 인물을 지어냈단다. 그렇게 해서 겉보기에 우리와 달라도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가진 특별한 아름다운 면을 보려 노력한다면,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성희 고려대 초빙교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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