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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던 한강 요즘은 살얼음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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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강이 얼면 사람뿐 아니라 마차도 건너다녔어. 두껍게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떠서 광나루 얼음창고에 보관했다가 여름에 꺼내먹기도 했지…."

서울 마포에서 1957년부터 살았다는 최순택(69)씨는 "70년대 후반부터 한강이 잘 안 얼더니 요새 보면 얼어도 살얼음만 살짝 어는 것 같다"고 말한다.

겨울철 한강에 얼음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1900년대 초엔 한강에서 두껍고 큼지막한 얼음을 채취했다(左). 요즘 한강에 어는 얼음은 유리판과 같은 살얼음이 많다. [중앙포토]

한강에서 스케이트를 탔다는 말은 7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일 정도다.

구룡낚시회 강영식(59.서울 관악구 신림동)총무는 "한강은 얼음이 얼어도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는 못된다. 얼려면 꽁꽁 얼어야 하는데 살얼음이 어니 물낚시도, 얼음낚시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 겨울에는 지난달 23일 한강이 처음 얼었다.

예년 평균보다 열흘 늦은 것이다. 그나마 닷새 만인 지난달 28일 다 녹았다. 81년 이후에는 12월에 한강에서 얼음이 관측된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어는 시기가 늦어졌다.

1901년 이후 한강물이 얼지 않았던 해는 모두 다섯번(60, 71, 72, 88, 91년)이다. 가장 빨리 얼었던 때는 34년으로 12월 4일에 첫 얼음이 관측됐다. 가장 늦게까지 얼어 있었던 것은 28년으로 4월 4일에야 한강의 얼음이 녹았다.

지금은 옛날보다 늦게 얼고 일찍 녹는다. 두꺼운 얼음을 보기도 어려워졌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도 정확한 원인을 분석한 적은 없지만 일단 ▶지구 온난화 ▶댐 건설로 인한 한강의 유량 증가 ▶온도가 높은 하수 유입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상청에서 한강이 얼었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한강대교 노량진쪽 둘째 교각에서 넷째 교각 사이가 얼었을 때다. 두께에 관계없이 얼음으로 강물을 완전히 볼 수 없는 상태면 얼었다고 본다. 반대로 얼음이 녹아 일부라도 강물이 보이면 녹았다고 판단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 부근에서 한강 물이 얼려면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가 적어도 3~4일 이상 계속되고 낮 최고기온도 영하여야 한다.

그러나 서울의 1월 한달 최저기온의 평균치는 82년 이후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1월 평균기온도 87년 이후 영하 5도를 웃돈다. 서울의 겨울이 옛날보다 덜 추워진 건 확실하다.

기상청 김태룡 공보관은 "기온 상승은 도시화가 가장 큰 이유일 것"으로 분석했다. 인구가 집중되고 겨울철 난방 에너지 소비가 늘면서 기온이 상승한다는 설명이다.

댐 건설도 원인으로 꼽힌다.

환경부 유영창 상하수도 국장은 "댐 건설로 겨울철에도 한강물이 늘어나 물의 흐름이 빨라진다"며 "물의 양이 많아지면 잘 얼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건설교통부 하천관리과 허철 계장도 "80년대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하면서 강폭을 넓히고, 강바닥을 깊게 판 것도 한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물에 따뜻한 하수가 흘러들어와 수온을 높이는 것도 결빙을 방해한다.

서울시 4개 하수처리장 중 최대 규모이면서 얼음을 관측하는 노량진 부근에 영향을 주는 곳은 중랑과 탄천 하수처리장이다. 중랑 처리장에서는 하루 170만㎥가량의 하수를 내보낸다.

하수의 온도는 겨울에도 9도 안팎에 이른다. 생활하수에는 각 가정에서 사용한 온수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일본에서는 하수처리수의 열에너지를 난방에 활용하기도 한다.

반면 팔당호에서 내려오는 물의 양은 하루 800만~1000만㎥가량이고 수온은 2도로 낮다. 여기에 하수가 합쳐져 노량진 부근에 이르면 수온은 4도로 올라간다.

홍익대 토목공학과 김응호 교수는 "도시형 에너지 소비 등의 영향이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일반인 사이에는 물이 더러워 얼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더러운 물의 빙점은 깨끗한 물보다 낮다. 한강 하류의 물은 2~3급수로 깨끗한 편은 아니다.

이에 대해 환경부 최용철 하수도과장은 "아예 흙탕물이 아닌 다음에야 수질오염이 결빙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을 것"이라 진단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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