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있는풍경>충북청원 성무응방 응사 박규섭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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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훠어이 훠어이….」 창공으로 까마득하게 치솟은 매를 부르는소리가 마른 겨울바람 속에 쨍쨍하게 울려퍼지는 곳.
그 목소리를 따라 형형한 눈빛,날카로운 발톱,강인한 날갯짓을거둔채 순순하게 주인의 어깨로 돌아와 앉는 매와 함께 살리라며충북 청원군 강내면 궁현리 산골로 찾아든 사람.
한때 바다를 누비는 해운에 뜻이 있어 미국으로 떠난지 15년만에 느닷없이 매를 안고 돌아온 박규섭(朴圭燮.41)씨의 머리속은 오직 매와 연관된 일로 가득차 있다.
매는 그에게 무슨 의미인가.그는 스스로 응사(鷹師)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창공을 박차고 먹이감을 향해 돌진하는 매의 멋진사냥모습에 매료돼 결국 매 훈련의 명장 면허를 취득한 후 매사냥의 종주국인 한국의 긍지를 되찾겠다며 그는 고집스레 돌아왔다. 그 첫단계로 매(보라매)를 상징으로 여기는 공군사관학교를 찾아가 간청,성무응방(鷹坊)을 차려 사관생도들에게 매사냥 훈련을 시키고 매를 돌보는 응사로 일하게 됐다.
그는 매와의 질긴 인연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대대로 매사냥을 해온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 자신 고등학교 때까지 매사냥을 하는 숙부를 따라 들과 산을 누볐던 기억을 갖고 있다.거기서 인연이 끝나리라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미국 체류중 어느날 알바니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가 매사냥을 하는 북미 매사냥협회의 연례모임과 만났다.
이것이 인연이 돼 미국의 상류층 사람들로 구성된 이 협회를 쫓아다닌지 10년만에 그는 매훈련 명장면허를 받았다.
도제면허와 일반면허를 딴 후에도 상당한 세월이 지나야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비로소 야생의 보라매나 송골매를 잡아 훈련을 시킬 수 있는 면허를 갖게 된 것이다.
매의 습성과 인간과의 관계,그 역사 등을 추적하기 위해 도서관을 드나들었던 그는 한국에선 이미 고구려 유리왕때 매사냥이 성행했고, 고구려 충렬왕 때는 매사냥을 위한 응방이 설치됐다는기록을 접한 후 매의 연구에 몰입했다.이후 이어 지던 매사냥 명맥은 6.25를 기점으로 한국에서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매는 한국에선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어 군사용.학술용.
관람용으로만 소유할 수 있다.
『매가 사냥하는 호쾌한 모습을 즐기는 것이 매사냥의 목적입니다.매를 인공 번식시키고 건전한 스포츠로서의 매사냥을 인정받아종주국으로서의 면모를 되살리고 싶습니다.매사냥은 현재 영국.사우디아라비아 왕실등 여러나라에서 고급스포츠로 사 랑을 받고 있습니다.』 매에 미쳐 돌아온 그에 대한 친지들의 시선이 따가워도 그는 매일 9마리의 매가 하늘로 치솟아 정해준 먹이감을 사냥한 후 주인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묵묵히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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