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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때까지 간 인터넷 개인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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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일 오후 100여 명의 네티즌이 인터넷 개인방송 ‘아프리카’의 장난 전화방에서 생중계되는 방송을 보고 있다. 네티즌은 중계 중인 방송을 보면서 채팅방에 코멘트를 남겨 BJ(Broadcasting Jockey·진행자)에게 전화 받는 상대방을 더 심하게 괴롭히라고 요구한다.

충남 천안에 사는 최모(20·여)씨는 19일 오후 6시20분쯤 전화를 받았다. ‘060-330-×××× ’인 발신번호가 떴다. 수신자 부담 전화라는 안내원의 코멘트에 이어 “OO야, 나다 전화받아”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이름을 듣고 통화에 응했다. 상대방은 다짜고짜 “나랑 사귈래?”라는 황당한 말을 꺼냈다. 당황한 최씨가 “내 전화번호와 이름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따지자 상대방은 “네 친구가 알려줬다”며 욕설과 함께 듣기 민망한 음담패설을 늘어놨다.

 최씨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이런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집단 괴롭힘 즐기는 일부 네티즌=19일 오전 1시쯤 네티즌이 직접 방을 만들어 자신만의 방송을 내보내는 인터넷 개인방송 아프리카(http://afreeca.pdbo× .co.kr) 사이트. ‘장난 전화 ㄱㄱ’이란 제목의 방에는 개설자인 ‘BJ(Broadcasting Jockey·진행자)’와 네티즌 120여 명이 접속해 있었다.

 BJ가 ‘장전 들어간다’는 메시지를 띄우자 채팅 창엔 ‘010-6876-×××× , 서OO, 선배 빽 믿고 잘난 체 하는 애인데 혼내달라’는 글이 올랐다. BJ는 즉석에서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어 “OO야, 네가 그렇게 깝친다며, 네가 그렇게 잘났냐. 이 × × 야”라는 거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고 당황해 하는 서군의 반응이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그러자 채팅 창에는 ‘더 시비 걸어’ ‘욕 좀 더 해’ ‘학교 앞으로 나오라고 해’라는 등 괴롭힘을 부추기는 글이 이어졌다. BJ의 험한 말이 한동안 이어진 뒤 전화가 끊겼다. 네티즌들은 ‘ㅋㅋ 또 한 건 낚았네’라며 재미있어 했다.

 채팅 창에는 ‘011-9798-×××, 김OO, 자기가 얼짱인줄 아는데 욕 좀 해달라’ ‘010-3138-×××× , 이OO, 그냥 시비걸어 달라’는 요청이 잇따랐다.

 같은 시간대 이 사이트에는 장난 전화방 10여 개가 개설됐고, 1000여 명이 접속해 비슷한 행위에 열광하고 있었다. 국내 인터넷 개인방송 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이 타인의 실명과 전화번호를 이용해 장난 전화를 걸어 음담패설과 욕설을 늘어놓는 장면을 함께 보는 ‘생중계 장난 전화’가 유행하고 있다. 방송 창 개설자에게 네티즌들이 자신이 아는 이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제공하고 괴롭힘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울음을 터뜨리거나 당황해 하는 피해자의 반응을 즐기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장난 전화는 수신자 부담이어서 전화받는 이들에게 이중 피해를 주고 있다. 90초에 220원의 요금이 피해자에게 부과된다. 피해자들은 수신자 부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대는 바람에 거부하지 못해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15일 새벽 수신자 부담 전화를 받았다는 김모(26·대학생)씨는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는 등의 장난 전화가 끊어도 끊어도 계속돼 결국 전화번호를 바꿨다”고 하소연했다.

 ◆피해 신고 봇물=사이버 경찰청 게시판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는 전화를 받고 하루 종일 불쾌했다”는 등의 내용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경찰은 이에 따라 해당 사이트와 네티즌 등을 상대로 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새로 나타난 현상이어서 아직 처벌한 사례는 없지만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며 “특히 실명과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괴롭힘을 의뢰한 네티즌 역시 공범이나 교사범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프리카 측 관계자도 “최근에 늘기 시작한 장난 전화 방송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내부적으로 법적 제재를 위한 자문을 받아놓았다”고 말했다.

 숭실대 배영(정보사회학과) 교수는 “남이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보면서 일종의 관음증 같은 쾌감을 느끼는 행태”라며 “사법기관이 초기에 확실한 처벌을 해야 근절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화·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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