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민주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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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 02면

세계를 알기 위해 영국의 The Economist를 자주 봅니다. 경제 주간지이지만 국제정치까지 폭넓게 다루고, 날카로운 시각이 매력입니다. 지난주 미국 대선을 분석한 기사가 재미있었습니다.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경선에서 민주당·공화당 모두 지역이 바뀔 때마다 1등 후보가 바뀌는 혼전을 거듭하는 데 대해 ‘미국 유권자들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더군요. 모두들 ‘변화’를 외치고 있지만‘어떤 변화’인지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얘기죠.

우리의 지난 대선은 이와 정반대였던 듯합니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분명했습니다. ‘경제’ 한마디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부단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초지일관 이명박 후보가 리드했습니다.

국민의 기대가 명료했던 만큼 당선인의 국정철학도 확실해 보입니다. 인수위원회 사람들 얘기를 직·간접적으로 들어보니 그런 느낌이 듭니다. 모든 게 ‘일 우선’이랍니다. 당선인 스스로 모든 일을 챙기겠다는 자세랍니다. 스스로 ‘백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고 할 정도라니 참모들이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레드 테이프(Red Tape·관료적 형식주의)를 모두 철폐하라고 주문했답니다. 각종 위원회를 없애고, 장관 자리를 줄이고, 규제를 철폐하는 것들이 모두 그런 취지라네요. 실제로 업무를 수행할 각 부처 국장과 과장들에게 명실상부한 책임과 권한을 주고, 필요하면 대통령이 장·차관 대신 국장·과장을 불러 업무를 챙길 것이라고 합니다(3면·7면).

얘기를 듣다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많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집무실 벽 가득히 수출목표 그래프를 그려놓고 관련 부처 실무자들을 불러 목표달성을 재촉했었다는 얘기가 떠오릅니다. 어쨌든 공무원들이 바빠지리란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효율성에 따른 부작용입니다. ‘행정부에선 민주성보다 효율성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매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Special Report). 물론 지난 10년간 정권이 민주성을 강조하느라 효율성을 잃었던 점은 분명합니다. 현시점에서 효율성을 되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민주성을 잃지 않는 배려도 필요하겠죠. 효율성을 상실했던 지난 10년은 어쩌면 민주적이지 못했던 그 이전에 대한 반작용이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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