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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대학교>9.척박한 대학문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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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해 6월1일 저녁 서울대 대학본부앞 잔디밭에는 학생.교직원.주민등 2만여명이 운집했다.이날 행사는 생방송으로 진행된 KBS 교향악단 초청 연주회「초여름 밤의 야외 콘서트」.
잔디밭에 자리를 잡지못한 사람들은 부근 건물 옥상까지 올라가중간 중간 연주가 끝날 때마다 환호성을 올렸다.교향악단을 초청한 대학 당국도 예상밖의 엄청난 호응에 깜짝 놀랐다.관악 캠퍼스 시대가 시작된 75년이래 순수 문화행사에 이 렇게 많은 서울대인들이 모인 적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서울대인들은 분명문화에 목말라 한다.
서울대에서 유일하게 「문화」자가 붙은 단독 건물인 문화관.공연.전시.국제회의 등을 할 수 있는 하나뿐인 시설이다.
하지만 음대 학생이나 예술 동아리(서클)들은 문화관에서 공연하기를 꺼려한다.공연장의 필수 시설인「음향판」이 없기 때문이다. 음향판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88년 11월 무대 천장에 설치돼 있던 음향판이 떨어져 공연 연습중이던 음대생 한명이 숨지고 다섯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사고 이후대학 당국은 예산상의 이유(1억여원 소요)로 7년 가까이 이를방치해왔다.
『음향판은 사방으로 퍼지는 소리를 모아 객석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이 시설없이 음악 공연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지요.』 기악과 김민(金旻)교수는 이 때문에 외부 예술단체들을 선뜻 초청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문화관의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다.전시실 조명등의 각도 조절이 마음대로 안돼 제대로 전시효과를 낼 수 없다.무대의 막을 올리는 기술 요원이 없어 「막 없는 공연」을 해야 하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진다.
서울대는 문화 불모지대나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예술과목을 수강하려 해도 여의치 않다.현재 교양과정중 미술과 음악을 합쳐 10과목을 넘지 못한다.
다양함과 넉넉함 대신 삭막한 분위기가 지배하는 캠퍼스는 학생문화의 구심점인 동아리의 열악한 여건에서도 바로 알수 있다.
학생회관에는 60여개의 동아리 사무실이 모여 있다.동아리당 방 면적은 5평 정도.방 하나에 4개 동아리가 모여 있기도 한다.공간 부족으로 베란다나 창고를 개조해 쓰는 곳은 비가 오면천장이 새 물바다가 된다.이런 지경이니 공연 동 아리들의 연습공간이 있을리 없다.전화는 물론이고 난방도 되지 않는 방이 수두룩 하다.
동아리 연합회장인 홍성규(洪性奎.21.도시공학3)군은『한 쪽에서 학술 토론을 하는데 다른 쪽에선 MT 준비 노래를 부르는경우도 흔히 있다』고 말한다.
시설 만큼이나 운영도 형편없다.대학 당국이 학기당 운영비 조로 주는 예산은 동아리당 7만원.대부분 운영비는 학생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서울대 예술문화연구소가 최근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서울대에 고유한 대학문화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절반 이상(54.9%)이「없다」고 대답한 반면「있다」는 응답은 전체의 4분의 1도 안됐다.「대학내 전반적인 문화현상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6.8%에 불과했다.
이같은「대학문화 부재(不在)」는 70,80년대 대학가를 휩쓸었던 학생운동 문화가 90년이후 힘을 상실했지만 이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
분과별 동아리 회원수의 변화 추세를 보더라도 최근 5년사이 공연.예술.사회봉사.언론 동아리는 2.5배 가량 늘어난 반면 학생운동의 산실이던 학술 동아리는 꾸준히 감소해왔다.78년 교양강좌로 처음 스키강좌를 열었을 때 15명이 신청 했지만 올해1학기에는 2천명이 몰렸다.
***외국大와 대조적 대학가가 탈정치화 되면서 학생들은 다양한 예술 및 사회 활동을 원하고 있다.하지만 서울대의 문화 행정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공급할 수 있는 제도와 지원책도 없다.
대학본부에 있는 35개 위원회중 주차위원회는 있어도 문화 관련 위원회는 없다.박물관장은 있어도 문화관장은 없다.문화관은 시설과 직원 두명이 전담하고 있을 뿐이다.문화 예산이 별도로 없고 학생처나 시설국의 일부 예산이 그때그때 주먹 구구식으로 집행되는 정도다.대학 행정의 우선 순위에서 문화는 맨끝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 명문대들은 모두 학내 문화 진흥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경우 예술사무소가 있어 대학의 예술 활동을 조직적으로 지원한다.학생들은 원작 예술작품을 대여 받거나 4백여개에 달하는 음악.연극.무용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또 1천여개가 넘는 미술품이 항상 캠퍼 스내에 전시되고 있다.
외국 대학이 이처럼 대학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문화의 향기」가 건전하고 교양있는 대학인을 길러낸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취재반〉 ◇도움말 주신 분▲金東進 서울대 학생처장▲徐友錫 서울음대 학장▲金文煥 서울대 인문대 교수▲張昊翼 서울대 학생부처장▲金旻 서울음대 교수▲韓雲晟 서울미대 교수.
〈다음 회에는「대학원생의 고충」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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