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선진국 진입과 인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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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근년에 와서 지도자의 무례한 말이 가져온 충격과 더불어 국민의 교양 교육을 맡고 있는 대학의 인문학이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인문학 교육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는 뚜렷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얼마간의 예산을 배정하는 것으로 입막음했다. 물론 새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현실 인식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개혁의 큰 틀을 세운 후에 선진국으로 가는 길인 교양 인프라를 보다 근본적으로 두텁게 구축할 것으로 믿는다. 새 정부가 국민의 교양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새로운 교육정책을 마련할 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유의하면 대학의 인문학 교육과 연구가 적지 않은 도움은 물론 탄력을 받을 것이다.

첫째 철학적이고 존재론 문제를 취급하는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교육에 있어 그것의 중요성을 사회로 하여금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인문학을 깊이 있고 창의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다른 어느 기술직이나 전문직 못지않게 탁월한 인재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우수 인력이 인문학 분야에 모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인문학도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줘야 한다. 지금처럼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이 취업전선에서 실용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버림받게 된다면 대학에서 인문학이 살아남을 수 없게 되고, 그 피해는 보이지 않게 사회 문제로 나타난다. 인문학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학제 간(學際間)의 교류’는 큰 도움이 안 된다. 이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어느 한 분야에 깊이 천착하는 데서 느끼는 기쁨을 박탈함은 물론 자기의 전공에 대해 정신적으로 빈곤함을 느껴, 불안한 인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영학·법학·의학·약학·사범 대학은 선진국의 경우처럼 대학 4년을 마치고 입학하도록 하고, 학부에서 자기 전공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회에서도 인문학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을 다른 분야 전공자와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경영학자의 말처럼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면 회사 일을 터득하는 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대기업 입사 조건에 경제·경영·법학 등과 함께 인문학 전공자를 포함시켰다. 인문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수많은 학생이 취업 때문에 경영학과 등에 기웃거리지 않았다. 사회에서 인문학도들을 버린다면, 선진화의 길목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학의 인문학은 황폐화하고 국민의 교양 교육은 그만큼 더 빈곤해질 것이다. 미국의 세계적인 명문 하버드대학 총장과 브라운대학 총장이 역사학·영문학을 전공한 교수란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 조국 선진화 작업의 철학은 ‘품격 높은 사회’의 기반이 되는 교양을 쌓기 위한 인문학 교육을 다시금 정립시켜 나가는 데서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