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쌀 넣는 냉장고 … 틈새시장 ‘히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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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82년 사업을 시작한 후 줄곧 대기업에 납품해 오다 지난해 처음으로 이 공장에서 자체 브랜드 상품을 출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 대표는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백색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호남에서 저희 회사가 유일하다”며 “소비자들과 직접 만난다는 생각에 한시도 공장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에 납품하면서 다져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해 중소기업의 저력을 보여 주겠다”고 자신감을 내 보였다.

이 회사가 처음으로 자체 상표를 붙인 제품은 소주 냉장고 ‘설레임’. 술을 차게 해서 마시는 사람들이 많은 데 착안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15년 동안 냉장고·냉동고·에어컨 부품을 삼성전자에 납품하면서 기술력이 쌓이자 자력으로 완제품을 생산하기로 결심하고 2년에 걸쳐 연구개발비로 10억원을 투자했다.

㈜나영산업의 고정주 대표이사(왼쪽에서 두번째)가 자체 브랜드 상품인 소주 냉장고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냉장고의 내부를 영하 9~11도로 유지해 소주를 살짝 얼리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소주를 마시면 목 넘김이 부드럽고 색다른 맛이 난다는 것. 소주 냉장고를 사용한 식당의 매출이 평균 30% 정도 올라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초 시판에 나서 연말까지 2500대를 판매, 12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5000대 25억원의 매출을 내다보고 있다.

다음달에는 쌀 냉장고를 선보인다. 쌀의 신선도를 유지하면 밥맛이 좋아지고 쌀 소비도 촉진할 수 있다는 주변 교수 등의 권고로 연구 개발해 냈다.

아파트 건설업체들과 빌트 인 제품 생산계약을 맺은 데 이어 상하로 뚜껑을 여닫는 일반 소비자용도 시제품이 나왔다.

고 대표는 “다른 중소업체들도 비슷한 제품을 모방할 수는 있겠지만 일정한 온도를 고르게 유지해 주는 기술력의 차이로 쉽게 따라 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97년 김치 냉장고의 ‘이너 케이스 가공공법’으로 특허를 냈다. 원판을 늘려가는 프레스 금형방식 대신 잘라 붙이는 용접방식을 개발한 것. 기존 7개 공정을 절반으로 줄인 데다 흠결 없이 만들어내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이 같은 방식을 받아들인 삼성광주전자 측은 5년간 원가를 100억원가량 절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다른 업체들도 대부분 용접방식을 채택했다.

고 대표는 저온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보관했다 배출하는 음식물 처리기도 조만간 낼 계획이다.

그는 “대기업 납품에 안주했다면 기술력 향상도 없었을 것”이라며 “대기업이 다루기 까다로운 틈새 시장을 집중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광주고속에 근무하다 82년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인 ㈜아성을 설립,제조업에 뛰어들었다. 92년 지금의 회사를 설립한 뒤 삼성광주전자 자동판매기 협력사로 등록했다. 공장을 크게 지었으나 일본서 금속가공 설비가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납품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손해를 감수하고서도 신의를 지켜 점차 매출을 늘려갔다. 2004년 이후 삼성전자 백색 생활가전 부문이 광주로 이전하면서 에어컨 금형 전문업체로 선정돼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동양매직·한샘 등에 에어컨·냉장고·냉동고 부품과 주문자 상표 부착방식의 제품을 납품, 4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자체상품 매출 60억원을 포함해 6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고 대표는 “자체 상품이 성공리에 자리잡을 경우 매출이 2~3년 안에 1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중소기업의 취약점인 마케팅 능력을 보강해 적극적으로 자사 상품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글=천창환 기자 ,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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