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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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제2부 불타는 땅 비내리는 나가사키(4)이놈이 지금 때가 어느 땐데,무슨 소리를 하고있는 거야.일본이 언제 망하느냐가 오늘 내일인 판인데,공습을 피해 아이들을 모두 시골로 소개를 시키는 판인데.그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고 섬에서 탄이나 캐던 놈일세. 육손이 추위에 언 시퍼런 길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놈 하나 팔아넘기는 거야 식은죽 먹기다만,살려달라고 기어들어온 놈을 그럴 수도 없는 일이고…난감한 일일세.그래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번도 들키지 않았단 말이지?』 『네,계속 산을타고 왔습니다.그리고….』 『더러 민가에 들어가 도둑질도 했겠지?』 길남이 더욱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그렇지만 불쌍하다면서 호박 찐거 같은 걸 먹으라고 주는집도 있었고,더러 찬밥도 얻어먹고.』 이 말은 해야겠다 생각하며 길남이 고개를 들었다.
『참,이쪽으로 올라오다가 집 앞에서 서씨를 만났습니다.』 『그 녀석이 네 얼굴을 알아보더냐?』 길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탄 캐러 갔다더니 어쩐 일이냐기에,거짓말을 좀 했습니다.그런 건 다 헛소리고…아저씨 심부름으로 간사이 쪽에 갔다왔다고 했습니다.』 육손이 작은 눈을 깜박이며 길남을 바라본다.
이놈 대가리 굴러가는 건,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니까.기와 한장 아끼다가 대들보 썩인다고,내가 이놈의 이 재주를 믿기는 하지만,나중에 되잡혀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거 아닌가.그렇다고 해도 그건 나중 일이고,닭 잡아 겪을 나그네 소 잡아 겪는 셈 치고라도 내가 거둘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알았다.장가녀석 일이야 그건 괘념할 게 없다.』 길게 한숨을 쉬듯이 육손이 말했다.
『너는 내집에 가서 며칠 숨어라.그리고 또 한 녀석,같이 왔다는 녀석은 들어오라고 해라.바로 내일부터 일을 시킬 테니까.
』 길남이 이마를 다다미 바닥에 닿게 고개를 숙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나서 서둘러 태성을 데리고오기 위해 일어서던 길남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집에 가 숨어지내라는 건 무슨 소립니까?』 『이놈이 이럴 땐 또 벽창호일세.너는 내가 집안일 시키고 있었다고 해야할 거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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