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시대>25.日 고베市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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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신(地神)의 시샘을 받았던가.도시개발의 본보기라는 평가를 받던 일본 효고(兵庫)현 고베(神戶)시는 지난해 둘러본 그 모습이 아니었다.지난 1월17일 발생한 대지진이 고베시를 강타했던 것이다.
그러나 처참한 피해를 보고도 놀라우리만치 침착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시민들의 모습은『역시 고베구나』하는 탄성을 자아냈다.
고베시는 민관(民官)이 힘을 합쳐 이룩한 도시개발의 역사를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제3섹터방식이 그것이다.크고 작은 사업을 펼침에 있어 시청과 민간기업(또는 개인)이 공동으로 투자하고 경영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도로.항만과 같은 사회간접자본건설은 물론 포도주 제조.백화점에 이르기까지 시립회사 또는 민관합작회사가 80개를 넘는다.
민관이 힘을 모으는 탄탄한 지방자치의 경험,그것이 고베시의 저력(底力)이다.이런 역사는 자그만치 42년전인 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을 깎은 흙으로 바다를 매립한 동부산업지대 1지구 공사가 처음 시작된 것이다.이후 70년까지 동부산업지대 4개지구(4백39㏊)와 서부산업지대 3개지구(1백4㏊)공사가 완료됐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고베시 매립사업의 간판은 「포트아일랜드」다.동서 3㎞.남북 2㎞,총면적 4백36㏊인 인공섬이다.66년에 첫 삽을 뜬 이후 80년까지 15년동안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해 8천만루베(입방m)의 흙을 바다에 퍼부어 완공 시켰다.총공사비는 5천3백억엔이 투입됐다.
당시 고베시로서는 이같은 공사를 벌일 밑천이 없었다.말은 꺼내 봤지만 중앙정부의 반응은 역시 어림없다는 것이었다.
고베시민들은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이런 사업을 벌였다면 착공자체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설사 시작됐다 하더라도 아직 끝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투자재원은 해외에서 조달한다는 방침을 마련했다.시가 발행한 채권을 국제금융시장에 내다 파는 방법이다.보증은 일본정부가 서 주었다.시의회에서도 금리가 싼 외국에서 기채(起債)하는 일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같은 방침에 따라 68년이후 2천7백억엔의 장기저리 외채를조달했다.전체 공사비의 절반을 웃도는 액수다.
거대한 인공항구는 이 지역 경제를 비약적으로 도약시키는 발판이 됐다.대규모 접안시설을 갖춘 컨테이너부두는 고베의 주 산업인 철강과 조선공업에 날개를 달아 주었던 것이다.
성장의 과실(果實)이 커지면서 빚을 갚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않았다.포트아일랜드는 3백90㏊를 더 넓히는 2단계작업을 하다가 지진을 만났다.이번 지진은 이 인공섬과 고속도로로 연결돼있는 고베시 연안공업단지에 제일 큰 피해를 가져왔 다.그러나 다행히도 이 섬은 사망자가 없는등 비교적 가벼운 피해에 그쳤다.
섬안쪽의 아파트.빌딩은 일부 금이 가는 피해를 보았고 길도 일부 깨졌다.제일 큰 피해는 선박이 접안하는 안벽이 가라앉아 일단 항구로서 제구실을 거의 못하게된 점이다.
일본 전체 상품 물류의 30%가 고베항에 들어오며 그중 대부분이 포트아일랜드에서 처리됐었기 때문에 타격은 크다.그러나 시민들은 민관합동의 사업정신으로 복구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다. 같은 방식으로 만든 인공섬은 하나 더 있다.포트아일랜드보다 규모가 큰「로코(六甲)아일랜드」다.72년에 착공해 92년까지 20년동안 5백80㏊의 바다를 메웠다.총사업비는 1조2천4백억엔.
이들 공사는 대부분 고베시가 주축이 됐지만 중앙정부에서도 방파제.안벽공사 일부에 참여했으며,컨테이너부두 시설공사는 민관합동법인인 고베항개발공사가 맡았다.이런 개발사업이 벌어지기 전 대부분의 시민들은 해변가에 몰려 살았다.집을 지을 만한 평평한땅이 바닷가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같은 매립사업이 완공되자 바다와 산간지대 양쪽에서 대규모 용지(用地)가 창출됐다. 인공항구엔 부두시설을 비롯해 유통.상업시설이 주류를 이루었고 산을 파낸지역엔 아파트단지,하이테크 공장,각급 학교와 연구소,종합운동장,문화.레저시설이 다양하게 들어섰다.
산을 깎은 곳에 들어선 신주택지와 해변가의 구시가지는 지하철을 건설해 불편없는 교통망도 구축했다.
도시기반시설을 위한 고베시의 집념은 이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포트아일랜드(2단계지구)옆에 역시 바다를 매립해 고베공항 건설사업이 추진되고 있다.지난해 실시설계에 들어간 이 공사는 오는 2003년 완공할 계획이다.지난해 가을 완공된 간사이(關西)공항의 덕도 보겠다는 복안인데 개항 첫해 여객수송목표를 2백40만명으로 잡아 놓고 있다.
이같은 사업을 벌이면서도 시와 시민들은 장래투자를 위한 재원을 축적해 놓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공공및 민간기금 46개에 현재 거의 6천억엔(4조8천억원)의 돈이 들어 있다.
***「인간본위」 내걸어 이 돈은 물론 사용처가 정해져 있는것이긴 하지만 이번 지진피해를 복구하는 데도 일부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를 내다보는 고베시의 행정은 정말 본받을 만하다.21세기시민들의 생활이 어떻게 나아질 것인지를 소개한 팸플릿은 시청이라는 곳이 시민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86년에 마련된 제3차 종합개발계획은 2001년의 노인복지시설.의료서비스.도서관의 장서수등 시민들의 미래생활상을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놓고 있다.
인간본위의 도시 만들기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는 이 계획은 건강.복지.고용.가정안정.주택보급.지역사회 육성.교육등 7개부문에 관한 장기비전을 제시하고 있다.2년전엔 2010년을 내다본 4차 개발계획안까지 마련했다.
시민들의 시정(市政)참여도 틀이 잡힌지 오래다.대표적인 통로가「시장에게 보내는 편지」다.93년에 무려 3천5백27통의 편지가 왔는데 비서실에는 이것을 읽고 대응조치를 하는 전담직원이5명이나 있다.
오랜기간 훈련된 자치(自治)는 이제 그들 생활과 별개가 아니다.『그동안 도시개발의 역사를 배우기 위한 발길이 국내외에서 끊이지 않았다』고 말한 시청 국제부의 마쓰다 다카아키(40)는『앞으로는 지진참사 극복사례를 배우러 오는 사람 들로 줄을 잇게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고베=沈相福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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