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고르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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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르바초프를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첫 느낌을 물으면 한결같은 대답이 「검은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발하는 빛의 강렬함」이다.뭔가 이상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같다는 것이다.그가 실각(失脚)하기전 美국무부의 한 소련문제 전문 분 석가는 『사람을 대할 때마다 그는 항상 웃는 얼굴이지만 그 속에는 러시아다운 온화함이 아니라 오히려 강철과 같은 차가움이 엿보인다.한마디로 그는 매우 냉혹해질 수 있는 남자다』고 말한 적도 있다. 반드시 긍정적인 면모랄 수는 없지만 그의 사람됨을 정면으로비판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대통령 재임중 그의 측근이었던 어떤사람은 『일곱명의 고르바초프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너무나도 빈번하게,너무나도 심한 진폭으로 주의. 주장을 바꾸어왔음을 빗댄 표현이다.한 예로 89년12월 『나는 공산주의자다.그것도 철통같은 공산주의자다』고 공식적으로 단언했던 그가 바로 며칠후 대처 영국(英國)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는『내가 아직도공산주의자인지 어쩐지 자신이 없다 』고 술회했던 일을 꼽을 수있다. 하기야 정치도 하나의 기술(技術)이라는 관점에서 그같은그의 행적을 한마디로 매도해 버릴 수만은 없을는지도 모른다.그의 대통령 재임을 전후해 전세계에서 쏟아져나온 그에 관한 수십권의 저서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그의 진면목을 파헤 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그것을 뒷받침한다.문제는『고르바초프-세계를 변화시킨 사나이』의 저자인 미국의 여류 사회문명비평가 게일 쉬이가표현한대로 정치가로서의 그가 지닌바「마법(魔法)의 힘」이 아직도 유효한가에 달려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산주의 역사의 휴지상자에 내던져진 최후의 공산주의 로맨티스트-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 나라를 잃어버린 남자』라는 쉬이 저서의 마지막 대목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는가의 문제도 아직은 유보적이라고 봐야 한다.
아닌게 아니라 蘇연방이 해체되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그의 행적은 다채롭고 왕성하다.한국방문에 앞선 中央日報와의 단독회견에서도 그는 내년의 러시아대통령선거에 출마할 뜻을 비추는가 하면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할 용의가 있다고 말 하기도 했다.
그가 다시금 세계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할 것인지 궁금하다.8일에있을 본사 초청 강연회가 주목되는 것도 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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