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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해외칼럼

북핵 외교, 호시절은 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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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이 점진적 비핵화를 선언한 지난해 2월 13일의 합의는 희망을 던져 주었다. 그러나 그 후의 사태 진전은 서울과 워싱턴에 경고 신호를 보내기에 충분했다. 2·13 합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경제 봉쇄 등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 아래서 나왔다. 국제적 압력이 줄자 북한은 미국의 추가 양보 조치가 없이는 움직이지 않을 태세다. 북한은 먼저 돈세탁 혐의를 받고 있는 마카오의 은행에 묶여 있던 자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다. 또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해결되기 전엔 경제 봉쇄를 풀지 말라는 일본의 주문을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즉 북한의 인권 보장·군사적 위협 등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2·13 합의에 없는 사항이다. 북한은 그동안 낡은 영변 원자로의 가동 동결과 불능화에 다소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합의서에 명시된 전면적이고 완전한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의 신고는 회피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 후 국제적 압력을 누그러뜨리려 노력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또 미국이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양국 관계를 정상화할 것을 바라며 부시 행정부가 물러날 때만 기다리고 있다. 이미 6~9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만한 플루토늄을 추출한 뒤 지난 2년간 거의 쓰지 않은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는 대가로 이런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다면 북한으로서는 괜찮은 장사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핵무기 포기가 가능치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북핵 폐기 협상을 해서 언론에는 호의적인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수년 동안 북·미 직접 협상과 대북 적대 정책 철회가 결실을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부시 정부가 북한에 대해 엄청나게 양보했음에도 결과가 별 볼 일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2·13 합의에 따른 북핵 신고 시한을 넘긴 지금 북한의 의도는 명확해졌다. 북한은 3일 핵 관련 선언이 최종적이라고 발표했다. 핵무기와 핵 관련 시설, 이란·시리아로의 핵 기술 이전, 또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등은 신고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동면에 빠졌던 미 언론의 일부는 깜짝 놀라 깨어났다. 워싱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같은 진보 언론들은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과 시리아 등에 수출한 핵 기술 등을 전면적이고 완전하게 밝히도록 압력을 가하라고 부시 정부에 촉구했다. 이제 진보 성향의 협상파가 완벽하고 되돌릴 수 없는 리비아식 핵 폐기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시 정부도 북한이 지난해 연말의 시한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인식했다. 북한의 잇따른 호전적 발표에 대해 ‘불행한 사태’라면서도 외교적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제 북한과의 핵 외교는 다른 국면으로 넘어갔다. 핵 외교는 더 이상 협상과 경제 봉쇄, 또는 양자 참여 또는 다자 참여, 외교 대 전쟁 사이의 선택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전개될 수 없다.

지난해 외교적 노력이 약간의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 줬지만, 북한은 진정한 비핵화를 실행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다. 그런 결심은 국제적 압력 없이 나오지 않으며, 결국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부시 정부가 임기 말에 북한에 더욱 압력을 가할지는 불분명하다. 미 대선 후보들은 이제 북한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생각하고 토의해야 한다. 이는 어려운 결정과 세심한 관심을 필요로 한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정리=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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