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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 평양, 남북 정보기관 수장 무슨 말 나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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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11월 30일 서울을 방문한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앞줄 오른쪽)이 김만복 국정원장(왼쪽)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접견하기 위해 나란히 청와대 접견실로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명박 당선인이나 한나라당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노동신문과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등 3개 신문을 통해 밝힌 신년사는 경제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도, 이 당선인에 대한 평가도 일절 하지 않았다.

 지난해 1월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남한에서의 반보수 투쟁은 통일운동의 전진을 위한 관건적 요인”이라며 한나라당 집권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는 딴판이다. 그런 궁금증의 일부가 풀렸다.

 본지가 9일 입수한 자료에는 김만복 국정원장이 대선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18일 방북해 한 일, 북측 관계자들과 만나 한 얘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김 원장이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주고받은 대화록에는 대선 뒤 남북 관계 변화를 걱정하는 북측 목소리가 담겨 있다. 김 원장은 이런 북측을 상대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나 큰 (남북 관계) 변화는 없을 것” “남한 내 보수층을 잘 설득할 수 있어 더 과감한 대북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런 설득의 결과는 남측 대선 결과에 대해 북측이 자극적인 발언을 삼가며 침묵하고 있는 이유와 연결돼 있는 셈이다.

 국정원 측은 김 원장의 방북이 지난 3일 뒤늦게 알려지자 남북 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 중앙식물원에 심은 나무에 표지석을 설치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이 ‘대선 하루 전 국정원장의 방북’을 모두 설명한 건 아니었다.

 대화록에는 표지석 설치와 무관하게 남측 대선 결과를 놓고 남북의 정보기관 수장들이 주고받은 대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대화록에도 1시간15분간의 오찬 때 나눈 얘기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했다. 두 사람은 비밀 만남을 수차례 하며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들이다. 그만큼 친분도 있다. 대화록 이상으로 속 깊은 얘기를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다음은 대화록 요지.

 ▶김양건 북한 통전부장=“평양 오느라고 새벽 일찍 일어나셨을 텐데 피곤하시겠습니다.”(이어 서울 집 출발시간, 판문점 통과시간, 평양 도착시간 질문)

 ▶김만복 국정원장=“평소에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피곤하지 않습니다.”(출발 후 도착까지의 경로를 설명한 뒤)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가 지난 8월 처음 방북 때보다 잘 정비돼 있습니다.”

 ▶김 부장=“(서울 방문 때의 경험을 살려) 서울~개성 간 도로에 비하면 아직도 보수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남북 간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 개·보수 사업이 차질 없이 진척되길 바랍니다.”

 ▶김 원장=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를 위한 현장조사(12월 11~13일), 개성~신의주 철도 현장조사(12월 12~18일) 실시 등 철도·도로 분야에 대한 정상 선언 이행상황 설명. 김 부장의 서울 방문기간(11월 29일~12월 1일) 중 촬영한 사진첩을 준 뒤 함께 보며 당시 상황 회고. 방한기간 중 김 부장에 대한 국내 언론의 관심 설명.

 ▶김 부장=“남조선 방문 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체류 일정이 잘 짜였고 행사 진행도 완벽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부산 북항과 감천항, 신항을 헬리콥터로 둘러보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 원장=“정상회담 기념식수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은 남북 관계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표지석 없는 기념식수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의미가 퇴색하기 마련이니까요. 표지석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부장=“우리도 기념식수의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님의 나무가 착근이 잘 되는지 걱정이 돼서 저는 물론 통전부 실무자들이 수시로 방문해 관계자들에게 정성 들여 키울 것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나무 위치가 관람객들이 많이 왕래하고 눈에 잘 띄는 지역이라 중앙식물원 최고의 명물이 될 것입니다. 남북회담이 지금처럼 많은 적이 없었습니다. 남북 관계가 잘 유지됐으면 합니다.”

 ▶김 원장=“남북 관계는 2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잘 진행되고 있으므로 남측에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잘 유지될 것으로 봅니다. 내일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지만 한나라당의 대북정책도 화해·협력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남한 내 보수층을 잘 설득할 수 있어 현 정부보다 더욱 과감한 대북 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김 부장=“국정원장 자리에 계속 계시게 됩니까?”

 ▶김 원장=“새 정부가 들어서면 바로 교체될 겁니다. 이런 것이 남측 사회의 기본 질서입니다.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김 부장=“건강합니다.” (이후 아들·딸·손자·손녀에 관해 담소 중 점심시간이 돼 식당으로 자리를 옮김). 

 ◆오찬 참석자=남측(5명): 김 원장, 윤○○, 남○○, 신○○, 조○○ 산림청 사무관, 북측(4명)=김 부장, 김○○, 리○, 리○○

 ◆오찬 대화 내용=평양 명승지, 날씨, 남북한 전통술, 음식 등에 관해 담소. 

 채병건·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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