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김양건 대선 하루 전 평양회동 대화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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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지난 5일 대통령직 인수위에 보고한 김만복 국정원장의 방북 관련 자료들. 모두 16쪽으로 사진은 대선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18일 김 원장이 평양을 방문해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록.

 북한 측이 대통령 선거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18일 평양을 방문한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에게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남북 관계가 지속되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1월 10일자 6면 보도)

 특히 김 원장은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남측 대선 결과를 궁금해하자 “내일(12월 19일)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당선이 확실시된다”고 말한 뒤 “(이명박 정부가)남한 내 보수층을 잘 설득할 수 있어 현 정부보다 더 과감한 대북 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설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 측은 5일 대통령직 인수위에 대한 업무 보고에서 김만복 원장이 대선 전날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해 김양건 통전부장과 이 같은 내용의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밝힌 뒤 대화록과 방북 관련 자료들을 보고했다고 인수위 측 관계자가 말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국정원의 인수위 보고 자료에 따르면 김 원장은 평양 모란봉초대소에서 김양건 통전부장을 두 차례 만났으며, 오찬을 겸한 면담에서는 대선 결과와 남북 관계 전망, 국정원장 교체 여부 등을 화제로 모두 2시간30분 동안 대화를 나눈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남북 정상회담을 기념해 북한 중앙식물원에 심은 나무 앞에 놓인 안내 돌(표지석). 12월 18일 김만복 국정원장이 가져가 설치했으며 ‘2007. 10. 2∼4. 평양 방문 기념,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 ’이란 문구가 들어갔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를 정리한 대화록 중에는 김양건 부장이 “지금 남측 철도·도로 고찰단(조사단, 12월 12~18일 활동)이 와서 활동하고 있는데 많은 경험을 할 것이고 백두산 관광도 잘됐으면 한다”며 “남북 회담이 지금처럼 많은 적이 없었다”고 말한 대목이 들어 있다. 북측 김 부장은 또 “남북 관계가 (대선 뒤에도) 유지됐으면 한다”며 대선 이후 들어설 남측 새 정부의 대북 정책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남북 관계는 남측에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잘 유지될 것으로 본다”며 “한나라당 당선이 확실하지만 한나라당의 대북 정책도 화해 협력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북측을 안심시켰다.

 대화록에는 이어 북측 김 부장이 김 원장에게 “대선 뒤에도 국정원장직을 계속 맡느냐”고 물었으며, 김 원장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곧바로 교체되며, 이것이 남측 사회의 기본 질서”라고 대답한 것으로 돼 있다.

 국정원 측은 방북 경위를 설명한 자료에서 김 원장의 방북 목적을 ‘10월 남북 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소나무의 표지석을 설치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뒤 방북 날짜를 대선 하루 전으로 결정한 데 대해 ‘대선을 며칠 남기고 방북할 경우 북풍 공작을 한다는 의구심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고, 대선 후에는 사실상 방북이 힘들어질 것으로 우려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 9월 남북 정상회담 사전협상 과정에서 북측이 표지석 설치에 반대했으나 12월 11일 국정원이 김 원장의 방북을 제의하는 비공개 통지문을 보내자 하루 뒤인 12일 드디어 표지석 설치에 동의한다는 통지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국정원 측은 “북측 사정으로 볼 때 (표지석 설치가) 김정일 위원장 승인 사항이므로 우리가 표지석 설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인식을 주려고 국정원장이 직접 나섰다”고도 강조했다.

 국정원 자료에 따르면 김 원장은 방북하기 하루 전인 12월 17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표지석을 설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겠다’고 보고했다.

채병건·정강현 기자

◆김양건(69)=대남사업을 총괄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통전부장)으로 지난해 10·3 남북 정상회담 테이블에 북측 인사로는 유일하게 배석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용순 노동당 비서 겸 통전부장(2003년 사망)이 앉았던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제2의 용순 비서’로 불릴 정도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이다. 남북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과 눈빛 대화를 나누거나 마주보고 웃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김 비서가 외향적이고 넉살이 좋았던 반면 김 부장은 조용하고 꼼꼼하게 업무를 챙기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 김 위원장이 대남 라인을 대대적으로 정비할 때 눈에 띄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 국제부장, 국방위 참사(간사)를 거쳤다. 통전부장이 된 건 지난해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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