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한국현대사>4.새롭게 조명되는 金玉均 암살배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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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혁명가는 죽어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키는가.갑신정변의 주역,김옥균의 암살 배후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김옥균의 암살은 조선정부의 명시적 지시와 청국 정부의 묵시적 승인 아래 자행된 사건으로 알려져 왔다.이것은 사건 발생 후 오늘에 이르는 1백년 동안 韓.中.日 3국의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이광린(李光麟.중부대)교수는 『김옥균 암살사건의 실질적 주모자인 이일직(李逸稙)이 당시 조선의 세도가인 민영소(閔泳韶)의비밀 지령을 받고 암살 계획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영작(金榮作.국민대)교수는 『김옥균의 암살은 당시 청국의 실력가인 이경방(李經芳)이 김옥균을 초청하자 그의 상하이(上海)행을 알아차린 범인들이 조선 정부에 아부하여 입신출세할 목적에서 자행한 범행이었다』고 반박한다.
그는 계속해서 『일본정부는 김옥균의 국내 체재로 인한 외교적부담도 덜고,제3국 체재로 인한 정치적 위험성도 다함께 없앨 수 있는 일거양득의 묘책이 제3국에서의 김옥균 암살이라고 판단해 자국(自國)의 재야정치인 오미와 조베에(大三 輪長兵衛)가 암살사건의 자금원인줄 알면서도 이를 방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조선정부와 청국정부가 여러차례 김옥균의 암살을 시도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정작 1894년3월28일 상하이에서 발생한 홍종우(洪鍾宇)에 의한 김옥균 암살은 조선정부나 청국정부와는 무관한 것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는 오히려 암살 계획을 사전에 알았으면서도 그의 암살이 결과적으로 자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이를 방치한 일본정부의 행태를 더 신랄히 비난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역사의 진실 또한 흘러간 세월속에 감추어져 있다.진실을 밝힐 수 없기에 그의 암살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폭될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말의 풍운아」김옥균.살아서도 조선 정계의 태풍의 핵이었지만,죽어서까지 역사에 파란을 일으키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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