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정책부터 따지는 미 유권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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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정말 미안하다. 나라를 대신해 사과한다. 다음 대통령부터는 정말 존경받는 미국으로 돌아갈 거다.”

 5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 유세에 나선 버락 오바마(민주당) 상원의원의 연설 장소인 내셔아고교에서 만난 변호사 마크 하워드(47)는 “한국에서 온 특파원”이라고 말하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부시의 지난 7년에 정말이지 신물 난다(fed up)”며 “가장 끔찍한 건 세계를 편가르고 일방주의로 치달아 미국의 이미지를 땅에 떨어뜨린 행동”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어 “말 안 해도 안다. 한국도 부시 치하 미국에 꽤나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시가 지구온난화, 관타나모 수용소 참상에 눈감은 사실을 지적하며 “부끄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공화당원들도 부시 대통령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3일 밤 존 매케인 상원의원 유세장에서 만난 교사 수 피어슨은 “뉴햄프셔 공화당원 중 대놓고 부시를 지지한다는 사람은 없다”고 말을 흐렸다. 10여 명의 미국인과 얘기하면서 느낀 건 7년째 끝을 모르는 테러와의 전쟁과 팍팍해진 생활에 대한 피곤함, 그리고 변화에 대한 갈망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미국 대선 후보들이 ‘바꾸겠다(change)’를 들먹이는 이유가 뭔지 와 닿았다.

 유권자들이 정권에 극도의 염증을 품고 ‘바꾸자’를 열창한 한국 대선과도 얼핏 비슷해 보였다.

 그러나 어떻게 바꿀지, 각론에 대한 접근은 달랐다. 대통령이 미우니까 무조건 누구를 뽑겠다거나 어떤 후보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무조건 안 된다는 식으로 얘기한 미국인은 기자가 만난 이 중엔 없었다. 대신 부시의 실정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이 뽑을 대통령은 “이런 이런 주장에서 신뢰가 가니까” “이런 이런 정책에서 차별화가 되니까” 선택했다고 꼭 논리를 폈다.

 “누군가를 반대하긴 쉽지만 그 사람 대신 뭔가를 하기는 쉽지 않다. 우린 쉽지 않은 걸 쉽게 해낼 사람을 찾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이지만 민주당 주자들은 물론 공화당 유세까지 다 둘러본 뒤 지지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코네티컷주에서 밤새 달려온 은행원 돈 오데이(50)의 얘기였다.

강찬호 워싱턴 특파원 (맨체스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