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김민자 ‘부부가 아름답게 해로한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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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그가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굉장했다. 여느 배우들보다 친근한 이미지면서도 감히 다가서기는 힘든 대배우의 포스라고 할까. 대화를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선입견은 깨졌다. 최불암이라는 배우 안에는 국민 아버지의 자상함과 닮아 가고 싶은 멋진 중년의 모습과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마치 연극 속의 다양한 캐릭터를 보듯….

흔히들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라고 한다. 유머와 감동, 고난과 좌절, 성공과 실패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때론 해피엔딩이 되며 때론 비극적인 결말을 맞기도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연극. 따로 관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주인공인 나는 그 안에서 울고 웃으며 장편 연극 한 편을 완성해 간다.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 최불암의 텔레세이(텔레비전과 에세이의 합성어)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배우라는 오래된 대사에 관하여』(샘터)는 67년 인생 연극의 기록이자, 40년 배우 생활의 역사다. 때로는 진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던 그의 인생에는 진한 멜로 한 편이 있었다.

1. 나는 사랑 하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닥터 지바고

“그녀가 크고 예쁜 눈매에 지성미가 물신 풍기는 여성이라는 동료들의 말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연속극이 시작되자 화면에는 그녀의 정갈하고
반듯한 이마와 지적인 표정이 클로즈업되었다. 그녀는 신인이면서도
주인공 ‘정동마님’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의 마음은 심하게 흔들렸고,
누군가에게 홀린다는 말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부부가 동행한 모습을 보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좀처럼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서는 일이 없지만 이 날만큼은 달랐다. 20년 넘게 한국복지재단 후원회장을 맡아 온 남편을 지켜보며 아이들을 후원하는 데 동참해 온 아내가 3년 전부터 활동해 온 청각장애인 후원 단체 ‘사랑의 달팽이’ 행사에 남편이 지원군 역할로 동행한 터였다. 매년 11월 9일을 ‘청각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후원 행사를 열어온 지 3년째. 특히 올해는 청각장애인들의 연주 공연도 공연이지만 ‘사랑의 달팽이’와 뜻을 같이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기획까지 더해 규모가 커졌다.

‘사랑의 달팽이’ 회장직을 맡고 있는 아내가 손님들을 맞으며 분주한 동안 남편의 시선은 줄곧 아내 뒤를 좇고 있었다. 큰 규모의 행사를 처음 치르는 아내가 혹시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의 마음과 자랑스러움이 교차하는 시선.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며 이젠 그림자까지 닮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전시된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오랜 세월 함께 늙어갈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원조 스타 커플이라 불러도 좋을 최불암·김민자 부부. 1968년 『주간한국』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스캔들 기사가 결혼의 결정적인 공로자였다. ‘눈이 큼직하고 지성적인 면모를 갖춘 여인’을 이상형으로 꼽았던 그는 TV 드라마 ‘정동마님’에서 아내를 처음 본 후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4년간 공을 들였다.

“스캔들 기사가 나기 전 『주간한국』에 있던 노련한 사진기자가 ‘저기 김민자씨가 대본을 보고 있으니까 가서 대본 한번 보라’고 하더라고. 최불암과 김민자 사이가 심상치 않다고 소문이 이미 뜬 거였지요. 정식으로 둘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안 찍을 테니 그런 식으로 유도를 한 거였어요. 나중에 보니 그 사진이 기사와 함께 대문짝만하게 났더라고. 당시는 결혼 약속까지는 아니었어도 눈길은 주고받았을 때지(웃음).”

영화사와 신문사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초등학교 시절 돌아가신 것, 생계를 위해 명동에서 주점(문화예술계 사람들의 아지트였던 ‘은성’)을 하고 있었던 어머니, 그리고 자신이 배고픈 연극인이라는 것까지 아내와 맺어지기에는 스스로 ‘조건’이 열악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아내의 측근들이 반대를 할 때는 서럽고 야속했다.

“그래서 아내를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를 많이 했지요. 커피숍에서 만날 때도 바깥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아내가 들어간 후에 몸을 날리다시피 하면서 뛰어 들어갔지. 무척 바쁜 척하면서 말이야. 하는 수 없이 커피숍 안에서 기다릴 때는 신문을 펼쳐들고 열독하는 모습을 보여줬지요. 그럴 땐 아내가 들어오는 걸 확인해야 하니까 반드시 신문에 구멍을 뚫어놔야 해. ‘저 왔어요’ 해도 처음엔 못 들은 척하고 집중하는 척해야 돼요.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웃음). 당시 연애 풍조가 참 보수적이었어요. 주문을 할 때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커피 두 잔’을 시키는 식이지. 걸을 때도 남자가 2~3미터 앞에 가고 여자는 뒤따라 가고…. 물론 우리 집사람은 그렇지 않았지요.”

처음 마주친 날, 매점 앞에서 계산을 하려고 서 있는 아내 대신 값을 치르는 그에게 “누구신데 돈을 내주시는 거예요?”라며 쌀쌀맞은 눈매로 묻던 그녀였다. 그 말끝에 “나 최불암이요” 하고 휙 돌아서 버렸다는 그.

“그 다음 말도 듣지 말아야 돼요. 그게 당시 남자들의 모습이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말없이 늘 외로운 척하고 있어야 돼. 여럿이 갈 때도 그중 한 여자를 좋아한다면 그 여자 근처에도 가면 안 되지. 그리고 슬쩍 지나다 눈길 한 번 부딪쳐 줘야 해. 그러면 여자가 관심을 주기 마련이라니까. 나뿐만 아니라 그땐 남자들이 다 그랬지(웃음).”

지극히 보수적인 남자의 연애 방식이었지만, 그 뒤에는 감동 백배의 정성과 노력이 있었다. 때론 꽃을 들고 때론 먹을 것을 들고 아내의 집 앞을 자주 찾아갔던 그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도 어김없이 아내를 찾아가 감동시켰다. 당시 그는 사랑 하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닥터 지바고의 심정이었고, 그녀를 위해 전부를 다 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덕분에 당시 동료 배우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대단했던 여배우 김민자의 사랑을 쟁취했지만.


2. 내 가정의 등불이 되는 것, 그게 진짜 스타다

“배우나 스타들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배우들은
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보다 삶에 서툴고
사랑 앞에서 미숙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세상의 시선 때문에라도 그들은
일반인들보다 더 인내하고 더 모범적으로 가정생활을 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을 하다가도 더러 파경에 이르면 여지없이 대중의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사랑 속에서 살고 죽는 배우라는 직업의
속사정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가슴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함께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참 결혼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감성적인 남자와 이성적인 여자의 환상적인 조합이라고나 할까. 뿐만 아니라 남편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고 덮어 두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잘 잊어버려 주며 큰마음으로 보듬어 주는 아내가 그는 고맙기만 하다.

“우리 집사람은 내 기분을 참 잘 알아요. 뭘 사자고 했다가도 내가 ‘그게 글쎄’ 하면 벌써 알아듣고 안 사요. 난 감성적인데 우리 집사람은 차디차요. 젊었을 때 그레이스 켈리하고 똑같다고들 했지. 사실 차고 냉정한 게 외모에서 풍기는 거지, 속으론 얼마나 뜨거운 사람인지 몰라요. 뒤끝도 전혀 없고 나보다 더 빨리 잊어버리지. 나를 위해 잘 잊어버려 주고 덮어 주는 것 같아요.”

물론 어느 부부나 그렇듯 사는 동안 늘 좋은 때만 있었던 건 아니다. 싸우기도 하고 굴곡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가정을 지키려는 근본적인 의지’가 있었다는 부부. 강부자·이묵원, 오현경·윤소정, 정혜선·박병호 등 먼저 배우 부부가 된 ‘결혼 선배’들을 비롯해 당시에는 스타 커플이 대부분이었기에 요즘처럼 스타 부부들의 잇따른 파경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는 않다.

“다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선배 입장에서 보기에 좋은 것만은 아니지. 이름 있는 사람들이니 책임감 느끼며 살아야지요. 스스로 좀 희생하더라도 잘 살아주는 게 공인의 도리라고 생각해요. 일반 부부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 어떤 선배가 나한테 ‘하늘의 별이 되지 못하더라도 한 가정의 등불이 돼라’고 합디다. 내 집안의 작은 촛불이나 등불이 되는 게 그게 진짜 스타 아니겠어요? 또 아내는 끊임없이 복종해 줌으로써 남편을 지배해야 해요. 그 복종이 없으면 격렬히 부딪쳐서 깨지는 거예요. 내가 우리 집사람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 때문이지. 기억력 좋은 사람이 때론 나를 위해 잘 잊어버려 주고 덮어 주니 말입니다. 이렇게 남편과 아내가 조화를 이뤄야 집안이 화목해질 수 있어요.”
있을 땐 상대방의 존재가 그렇게 고마운지 미처 모르지만, ‘없으면 어떨까’ 하는 전제로 살아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예전에 아내가 암 진단을 받은 후 2차 검진에서 오진이었음이 밝혀지기까지의 사흘 동안 죽을 것 같더라는 고백과 함께.

▼1970년 4년 만의 열애 끝에 결국 결혼에 골인한 부부의 신혼 여행길.

“친구 하나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려 이혼을 했어요. 내가 그럴 수 있느냐고 따졌지요. 그런데 그 친구 말이 ‘넌 용기도 없다. 아내랑 일평생을 살면서, 새로운 여자를 얻는 나의 용기를 왜 탓하느냐’며 나를 위선자로 몰더라고. 그런데 그 친구 결국 나한테 졌어요. 나라고 왜 다른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겠어요. 그런데 어디를 가서 찾아봐도 내 아내만한 사람이 없어요. 세상에 내 떡은 하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3. 결혼 38년 차 부부가 사랑을 소통하는 방식

“사람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 (…) 나는 배우의 자리에 머문
까닭에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내 것처럼 연기하며 살아왔다. 하여 문득
나의 진정한 자리는 어디인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연극과 드라마
그리고 영화에서 내가 연기했던 사람들의 삶도, 집으로 돌아와 홀로
마주하는 자연인 최영한의 삶도 온전히 내 것은 아니었다.”

좀처럼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그. 대신 아내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나름의 사랑 방식이다. 아침에 일어나 그 전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부부의 일과는 시작된다. 아내가 아침밥을 하는 동안 남편은 신문을 보면서 아내가 보면 좋을 기사에 체크해 놓고 이야기해 준다.

“우리 집사람이 말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데 알고 보면 굉장히 수다쟁이야. 내 친구들도 집사람 수다에 성품이 참 좋다고들 하지. 후원하고 있는 아이들(아내와 남편 각각 두 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 이야기, 어제 누굴 만났는데 어떤 얘길 하더라 등 주로 사람 얘길 많이 해요.”

◀1968년 두 사람의 열애설이 처음 보도됐을 당시 주간지에 실린 사진.

요즘에는 4개월 된 손녀 이야기가 주로 화제에 오른다. 아들 내외가 결혼한 지 4년 만에 얻은 첫 손녀라서인지 보고 돌아서도 보고 싶고 늘 눈에 선하다는 그.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날에는 컴퓨터 화면 한가득 손녀 사진을 띄워 놓고 그리움을 달랜다.

아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그이지만 결혼 후 아내가 상대적으로 연기 활동이 줄어든 것에 대해선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는 신인 배우 시절부터 주연을 맡으며 무한한 가능성과 탁월한 연기력으로 인정받았었다.

“집사람이 연기 활동을 쉰 지가 꽤 됐는데 옆에서 지켜보기에 참 안타깝고 아쉬워요. 밖에서 활동하는 나를 위해 일보다 가정을 택한 게 고맙고 또 미안하지. 그래도 집사람은 상이란 상은 다 휩쓴 사람이라 여한은 없지. 60대는 60대대로 70대는 70대대로 각각 역할이 있는 거지만 아내 스스로 개성 없는 어머니 역할은 안 하려고 하고 나도 권하고 싶지 않아요. 단역이나 하면서 보수나 받아 가는 거 싫다 하더라고. 10년 전쯤 같이 연극을 했는데, 그때 지방에 함께 다니며 공연하는 게 참 좋았지. 다시 그렇게 할 수 있는 연극이 있으면 함께 해보고 싶어요.”

요즘 내년 초 방영될 드라마 ‘식객’을 촬영 중이라는 그는 이젠 아이들이 크니 아무 역할이나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랬다가는 왜 그런 걸 하느냐고 금세 반응이 온다는 것. 돌이켜 보면 40년 배우 인생 내내 그는 무대 밖과 안이 하나의 삶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국민 아버지’로 살다 보니 밖에 나와서도 그만큼의 기대치와 역할이 요구됐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 자연인 최영한의 삶은 배우 최불암의 삶의 연장선이었다.

“사실 이젠 숨길 게 없는 삶이지요. 터놓고 산 지 40년이니 그런 삶도 익숙해요.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쉽게 바뀌는 게 아닙디다. 솔직히 나쁜 영향을 끼칠 만한 작품은 죽어라고 안 하기도 했지만, 방송사에서도 내 성향을 파악하고 그런 역할은 주지도 않았어요. 완전 파격적일 거라는 제안에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여자를 농락하는 단역도 해봤는데 그래도 기본 내 이미지가 뒤집어지지 않습디다. 나도 그랬고 팬들도 실망하는 눈치였지.”

인생이라는 연극의 남아 있는 막과 장에서는 또 어떤 드라마들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멜로는 네버엔딩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여태껏 그만한 로맨티스트를 본 적이 없으니까.

취재_박진영 기자 사진_이광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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