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사후의북한을가다>10.탈출 늘자 아파트에 보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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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자가 북한에 머무르는 동안 함경북도 무산시에서 5형제가 한꺼번에 중국으로 탈출한 사건이 있었다.
30~40대의 이들은「한끼라도 배불리 먹어보고 죽겠다」는 쪽지를 써놓고 두만강을 건너 연변으로 달아났다.
쪽지를 남기지 않았으면 쉽게 잡히지는 않았을텐데 이를 근거로보위부 방탄과 요원들은 즉각 이들을 붙잡아들였다.이들은 60년대 중국문화혁명 당시 부모가 북으로 이주했던 가족으로 아들 7형제중 5명이었다.과거 모범청년들로「당의 사랑을 받아」7형제가모두「노력영웅」칭호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사건이 발생하자 당국은 그 집에 입쌀을 긴급 지급하고『이렇게먹을 것이 많은데 반동의 길을 택했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금세 인근지역으로 퍼져 곳곳에서 수군거리고있었다. 북한당국은 며칠후 잡아온 5형제를 묶어놓고 규탄궐기대회를 가졌다.
잔인하게도 주민들을 대표한 규탄사는 그들의 노모가 하게 했다.직접 확인된 이번 탈출사건 말고도 朝-中 국경지역은 연이어 터져나오는 탈출자 문제가 심각했다.
최근에는 자동차 밀수사건에 연루된 51세 남자가 48세 유부녀와 함께 도망쳐 심양에 숨어있다 잡힌 적이 있었다 한다.
방탄과 요원들은 남자의 코를 철사줄로 꿰어 끌고 갔고 여성은북한쪽 교두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십명 아낙네들의 돌세례를 받고피투성이가 된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탈출자의 말로는 이렇다」는「본떼 보이기」를 중국쪽에서 보고있는 가운데 집행해 수많은 목격자가 있는 일들이다.
그래서 그들은「시국이 긴장하다」는 말로,중국조선족 보따리장사꾼들의 입북보다 탈출자 방지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과거에는「누구집에 누가 와 있나」에 관심을 보였으나 최근에는「누구집 인민이 어디로 갔나」가 더 중요한 일이 되고 있다.특히 아파트 층계 입구에 보초를 세워 주민들의 행방을 따진다.
이같은「긴장시국」은 강성산(姜成山)총리 사위 탈출이후 더욱 심각해졌다고 한다.
국경지역 주민들은 총리사위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지난해에는 또 이런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북한병사가 두만강을 건너 민가에서 부엌을 뒤지다 주인에게 발각됐다. 「배고파 넘어왔다」고 사정했으나 집주인이 중국인이라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자 그 병사는 주인을 사살해 버렸다.
밥만 훔쳐먹고 다시 돌아가려던 그 병사는 살인자가 돼 붙들려간 사실이 중국쪽에 널리 퍼져 있었다.실제로 두만강의 남평~개산둔 지역은 강물을 건너 뛸 수 있을 정도였으나 육안으로 보기엔 중국인지 북한인지 쉽게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 로 양쪽 모두 경비병 한명 없었다.
연변지역 관청에서 근무하는 한 조선족 고위관리는『수를 헤아릴수 없을 만큼 북한주민들이 탈출해와 골치를 앓고 있으나 북측이외교통로를 통해 지명송환을 하지 않는 한 묵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변지역에 수백명의 조교(북한쪽 교포)들이 특무역할을 하며 탈출자 색출에 혈안이 되고 있음도 밝혔다.
이 고위관리는 자신도 몇차례 북한을 방문해 실상을 파악했기 때문에『그냥 방치해두면 몽땅 다 넘어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따라서 북한당국은 주민들의 탈출을 막기위해 점점 포악한 방법을 쓰고 있으며『일제시대 순사들의 횡포보다 더 하다』는 불만이 주민들 가슴속에 맺혀 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북한주민들은 배고픔과 함께 눈치보기가몸에 밴듯 사소한 일에도 꼬리를 내리고 떠는 참으로 안쓰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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