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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 “<칠갑산> 뒤로 하고 내 갈 길 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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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가수 주병선, 그가 궁금하다. <칠갑산>으로 대학가요제에서 수상한 지 햇수로 20년이 됐다. 늦은 밤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는 여전히 흘러 나오지만 정작 주인공의 행적은 묘연했다.


연말이다. 송년회 자리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애창곡 한 가락쯤 뽑아내게 마련. 이럴 때 꼭 빠지지 않는 곡이 있으니,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두 눈을 꼭 감고 목청 돋워 부르는 <칠갑산>이다.

“그거 아세요? <칠갑산>이 ‘분위기 깨는 노래’ 1위라는 거요.”

다른 사람도 아닌, 가수 본인이 이런 농담을 던지니 당혹스러웠다. 서울 강남 포이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가수 주병선(41) 씨는 그렇게 자신의 인생 최고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칠갑산>은 전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명곡이지만 젊디 젊었던 그에게는 안 맞는 옷처럼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노래가 한창 인기를 끌 때도 TV 방송보다 라디오 방송을 주로 했어요. <칠갑산>을 젊고 빤질빤질한 애가 나와 부르려니 어색했거든요. <가요무대>에 나가는 것도 참 싫었어요. 다 나이 많으신 분들인데, 그 사이에서 전통가요를 부르는 것이 쑥스럽고 부끄러웠고요.”

사실 그가 젊은 시절 선망하던 음악 장르는 록이었다. 장발을 늘어뜨리고 열정적으로 음악을 부르며 가요제에 7번 도전했지만 결과는 늘 본선 탈락이었다. 1988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장르를 바꿔 봤다. 전공한 국악가요로 승부수를 던졌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명곡이 가져다준 영예가 눈부신 만큼 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음악과는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중에게 그는 영원히 <칠갑산>의 주병선이었다.

“록·발라드·레게 등 여러 장르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첫 히트곡의 이미지 때문에 못하다 보니 많이 속상했죠.”

그래도 지금은 자신이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길이 남을 노래를 부른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고. 발라드나 댄스곡은 세월이 지나면 그저 한때의 유행에 불과하지만, 이 노래는 평생 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란다.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달라진 가수 인생

주씨에게는 역사에 남을 법한 추억이 하나 더 있다. 1994년 조총련계 재일교포 여가수와 함께 도쿄(東京)에서 음반을 취입한 일이다. 남북 가수가 함께 음반을 취입한 것은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길옥윤 씨가 작곡한 <해빙 ­두 사람의 해후>라는 듀엣곡을 불렀다. ‘평화우호아세아음악제’의 이미지 송으로 쓰인 이 노래 덕분에 주씨는 국가기관으로부터 심문당하는 드문 경험까지 했다.

“고영란이라는 재일 조총련계 여가수와 함께 듀엣 곡을 불렀는데, 당시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국가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부르더군요. 어떻게 음반을 취입하게 된 것인지 경위를 묻고, 북에서 혹시 연락을 받았느냐고 하기에 그냥 가서 노래 한 곡 불렀다고 대답했죠.”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좋아하는 우리나라 가요 중 하나가 <칠갑산>이라고 한다. 2001년 북한에서 우리나라 가요 몇 곡이 해금 조치돼 북의 주민들도 들을 수 있게 됐는데, 여기에는 주씨의 <칠갑산>도 포함돼 있었다.

영광의 순간, 그 빛이 강렬했던 만큼 어두운 그림자도 짙었다. 쉽게 회복되지 않을 큰 타격을 입은 사건도 있었다.

2002년 9월 주씨는 한 여성에게 고소당했다. 죄목은 혼인빙자간음과 폭행. 지방 유흥업소 사장이었던 상대편 여성은 주씨가 유부남인 데도 미혼인 척 접근했고, 각종 명목으로 2억 원의 돈을 가져갔으며, 폭행까지 휘둘렀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주씨는 혼인빙자간음과 사기 및 폭행 혐의로 수사받았다.

“그 때를 기점으로 제 삶이 많이 달라졌죠. 잘 나갈 때는 세상 없어도 제 편일 것 같던 사람들이 제가 궁지에 몰리자 나 몰라라 하더군요. 그 때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주씨는 이후 재판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를 벗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심적· 물질적 괴로움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고. 그래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끝까지 믿고 지켜봐준 절친한 친구들 덕분에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주씨의 아내도 힘들었던 시간을 견뎌내고 지금껏 함께하고 있다.

불미스러운 사건의 여파를 털어내고 주씨는 최근 음악활동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드라마 <대조영>의 OST 음반에도 참여해 <어머니의 노래>라는 곡을 불렀다.

“드라마 <해신><대조영>의 음악감독을 맡은 이필호 씨와 절친한 사이에요. <어머니의 노래>라는 곡은 원래 제가 부를 노래는 아니었는데, 제가 다른 곡을 녹음하는 것을 보고 이 감독이 ‘한번 이 노래를 불러보라’고 해서 얼떨결에 녹음하게 됐죠.”

주씨는 최근 방송활동은 거의 하지 않아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음악을 접은 줄 알 것”이라며 웃어 보인다. 사실 그는 지방 공연 무대 등 여러 자리에서 자신의 음악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 <칠갑산>의 가수라는 이미지 때문에 국악 풍의 노래를 주로 부르는데, 관현악단 반주에 국악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한다.

“미니 콘서트 형식의 무대에 서면 지금도 관객 분들의 반응이 뜨거워요. ‘나를 이렇게 좋아해 주시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제가 하고 싶은 장르의 음악이 있고, 듣는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이 두 가지를 다 하면 되죠.”

얼마 전 주씨는 7년 만에 일곱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가사 속에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첫 번째 트랙인 <아버지의 강>은 가수 나훈아 씨가 직접 작사한 노래다.

“아직 정식 발매된 것은 아니다. 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것”이라며 주씨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20여 년 음악인생 동안 자신이 해왔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이 앨범에 담았다는 것이 주씨의 설명.

“저는 남들이 안 하는 것을 과감하게 시도하고, 그 주관을 밀고 나가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이왕이면 그런 가수들 중 최고가 돼야겠죠.”

담담히 심정을 밝히는 그의 표정에서 자신의 음악인생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젊음의 뒤안길’을 돌아 이제 다시 대중 앞에 설 그의 활동이 기대된다.

주병선 씨는 추계예술대 국악과에 재학 중이던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홍안의 그가 무대에서 열창했던 노래는 딸을 시집 보내는 가난한 홀어머니의 절절한 심정을 담은 <칠갑산>이었다. 복받쳐 터지는 슬픔의 감정을 구슬픈 가락 속에 잘 담아낸 한국 대중가요 최고의 명곡 중 하나다.

이 곡은 1978년 가수 윤상일 씨가 처음 발표한 것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주씨의 열창 이후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노래가 됐다. 노래의 배경이 되는 칠갑산에 ‘칠갑산 노래공원’이 생겼을 정도다. 이 공원 입구에는 가사에 등장하는 홀어머니와 딸의 조각상도 서있다.

이후 주씨는 여섯 장의 앨범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음악활동을 계속했다. 2002년에는 한 여성으로부터 혼인빙자간음과 폭행 혐의로 고소당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글■박미소 월간중앙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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