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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뛰자2008경제] "대한통운 잡으면 물류 패권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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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재계는 새해를 맞아 모처럼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재계는 이미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의 간담회를 전후해 새 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화답하듯 예년 수준을 뛰어넘는 신규투자 방침을 밝혔다. 출자총액제한이나 금산 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금지) 같은 규제 정책이 폐지 내지 완화될 거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수년간 제쳐둔 사업확대 전략을 다시 꺼내는 곳도 있다. 자연스레 산업계와 재계 판도가 출렁일 한 해가 예상된다.

태풍의 눈은 매물로 나온 국내 알짜 대기업들의 향배다. 부실과 외환위기의 늪에서 헤매다 피눈물 나는 구조조정으로 거듭난 우량 대기업들이 단장을 하고 새 주인을 기다린다. 덩치가 큰 데다 사업 내용도 알차 눈독 들이는 곳이 많다. 이들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재계 순위는 물론 국내 산업의 지형까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의 허만율 연구위원은 “성숙기에 접어든 산업 영역이 넓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관심은 핵심사업 강화와 신사업 발굴을 통한 ‘성장동력 확보’에 쏠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단기간에 확실히 이룰 수 있는 방법으로 인수합병(M&A)을 애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한통운과 쌍용건설 어디로 가나=목전의 관심은 연초에 최종 인수자가 결정될 대한통운과 쌍용건설이다. 법정관리 중인 대한통운은 매각 일정이 확정된 업체 가운데 단연 대어(大魚)다. 항만·물류·택배를 두루 거느린 종합물류 1위 기업인 데다 역세권 주변의 알짜 부동산과 리비아 대수로 공사 경험까지 지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꼽힌다. 지난해 매출 1조2000억원, 영업이익 600억원 이상이 추정되는 등 기업 내용도 좋다. 자산규모가 1조5000억원에 달해 임자가 누구냐에 따라 재계 순위가 단박에 바뀔 수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 법원이 인수의향서를 접수한 결과 금호아시아나·한진·GS·현대중공업·CJ·STX 등 쟁쟁한 업체 10여 곳이 뛰어들어 치열한 각축전을 예고했다.

대한통운 인수전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항공업계의 맞수 한진과 금호아시아나의 격돌이다. 그룹 회장들이 직간접으로 대한통운 인수 의지를 밝혀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태세다. 이들은 대한통운을 발판으로 세계적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자랑하면서도 지난해 하이마트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GS그룹도 만만찮은 기세다. 이 밖에 CJ·STX 등도 인수 의지를 불태운다. 법원은 대한통운의 최저 입찰가격을 2조4000억원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합치면 최종 인수가는 이를 훨씬 웃돌 것이라는 게 시장의 예측이다.

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단이 50.07%의 지분을 보유한 쌍용건설 인수 경쟁에는 오리온그룹·동국제강·아주그룹·남양건설·군인공제회·SNK인베스트먼트 등이 참여했다. 채권단은 이들 6개사 중 최종 인수 후보군 두세 곳을 뽑아 2월 중 최종 입찰을 실시할 예정이다. 금융가에서는 브랜드 프리미엄 등을 고려할 때 채권단 보유 주식의 시가총액(4000억원대)의 두 배 가까운 7000억~8000억원대에 매각이 결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쌍용건설의 매력 포인트는 해외건설 시장에서 확보한 높은 인지도와 수주 실적, 최근 되찾은 수익성 등이다. 그러나 우리사주조합이 전체 지분의 24.7%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는 등 변수가 있다. 우리사주조합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고 우호 지분까지 확보할 경우 다른 기업이 캠코의 지분 인수에 성공한다 해도 경영권 획득이 만만치 않다.

◆옛 현대 및 대우 계열사의 향배=뿔뿔이 흩어진 옛 현대 및 대우 계열사들이 어느 품에 안길지 관심이다. 이들은 기업회생 과정에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많은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산업은행의 민영화가 진전되면 이들 기업의 지분 매각도 급물살을 타게 된다. 산업은행이 지분을 보유한 옛 대우와 현대의 주요 계열사들은 대우조선해양(31.26%), 하이닉스반도체(7.1%), 현대건설(14.69%), 현대종합상사(22.53%) 등이다.

이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올 하반기 매각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현대건설이다. 시가총액이 10조원에 달하는 대단한 덩치도 그렇지만, 이명박 당선인이 기업인으로 성공신화를 일군 ‘마음의 고향’이라는 점, 현대가(家) 구성원들의 격돌이 예상된다는 점 등이 관심 포인트다. 현대건설 인수에 가장 열성적인 곳은 현대그룹이다. 그룹의 몸집을 키우고 현대가의 모태를 되찾아 정통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옛 주주의 경영 책임을 물어 현대그룹 쪽에는 지분을 넘기지 않겠다는 산업은행의 입장이 걸림돌이다.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의 의향도 관심이다. 현대건설은 현대상선의 지분 8.3%를 보유해, 현대건설 인수전이 본격화할 경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정몽준 의원 진영의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덩치가 크기로는 하이닉스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36%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11조원대. 채권단의 지분을 사가는 데 4조원 이상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부에선 하이닉스의 유력한 인수 주체로 LG그룹을 거론하지만 해당 기업은 공식 부인한 상태다.

지난해 매각절차 착수를 추진하다 미뤄진 대우조선해양도 올해 본격적으로 새 주인을 찾는 작업에 들어갈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현대중공업과 포스코·GS그룹·삼성중공업 등이 인수 희망자로 거론된다. 2년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 지난해 흑자 기조로 돌아서는 등 매각 여건도 좋아졌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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