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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충무로 르네상스’ 희망은 살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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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모던보이’ (左),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右)

 2007년은 충무로에 우울한 한 해였다. ‘디워’‘화려한 휴가’의 쌍끌이 흥행,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등의 낭보에도 한국 영화 전체 수익률은 급락했고, 관객 수 역시 11년 만에 뒷걸음을 쳤다. 최근 10년간의 ‘충무로 르네상스’가 끝난 게 아니냐는 탄식도 흘러나왔다. 좌절은 이르다. 2008년에는 한결 다양한 작품이 관객과 만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중앙일보 영화팀은 한국영화 제작자·투자자·평론가 등 총 25명에게 2008년 기대작을 물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을 필두로, 중견 감독들의 대작이 상위권에 올랐다.

‘신기전’(上), ‘강철중’ (下)

 ◆만주에서 말 달리고, 경성에서 댄스를!=‘놈놈놈’은 일명 만주 웨스턴, 즉 일제강점기 만주를 무대로 한 한국형 서부극이라는 새로운 발상으로 일찍부터 충무로의 관심을 집중시킨 영화다. 보물지도를 두고 현상금 사냥꾼·살인청부업자·열차털이범이 일대 활극을 벌이는 이야기다.

 여기에 송강호·이병헌·정우성의 톱스타 캐스팅까지 더해져 대부분의 응답자가 기대작으로 첫손에 꼽았다. 메가폰을 잡은 김지운 감독이 코미디·누아르·공포 등 다양한 장르에서 고루 수작을 내놓았던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응답자들은 “장르마다 새로운 맛을 낸 감독” “단연 새로운 기획”이라는 말로 기대감을 드러냈다.

 제작비 역시 100억원을 훌쩍 넘겨 올 개봉 예정작 중에 가장 큰 규모로 보인다. “산업적으로 충무로를 끌어줘야 할 역할” “크게 잘되는 영화는 뭔가 새로운 요소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다.

 정지우 감독이 촬영을 마친 ‘모던보이’ 역시 일제강점기가 배경인데, 이번에는 경성이 무대다. 식민지 현실을 뒤로 한 채 낭만에 탐닉하던 남자가 실종된 애인을 찾으려다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시대 배경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정지우 감독의 연출력이 기대 요소로 꼽혔다. 새로운 감각으로 시대 분위기를 재현한 미술과 박해일·김혜수의 연기에 대해 “비주얼을 보는 재미와 캐릭터를 보는 재미를 고루 기대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일제강점기를 택한 영화가 한둘이 아니다. ‘라듸오 데이즈’는 1930년대 경성 최초의 라디오방송국을 무대로 한 소동극. 기대작으로 추천되지는 않았지만 ‘원스어폰어타임’도 40년대가 무대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라=올해의 기대작은 색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대배경을 살리기 위해 70억∼100억원의 큰 제작비가 투입된 것도 공통점이다.

 최근 태국에서 현지촬영을 시작한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는 70년대 초 월남전이 배경.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초점이 확연히 다르다. 3대 독자로 월남전에 참전한 남편을 만나기 위해 순박한 여자 ‘순이’가 위문공연단에 합류하는 이야기다. “전쟁을 여자의 관점에서 펼치는 점이 새롭다” “멜로와 음악과 스펙터클이 고루 볼 만할 것” 등의 기대다.

 촬영을 마친 김유진 감독의 ‘신기전’은 조선시대 최첨단 무기개발이 소재로 한 새로운 사극이다.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로켓포 ‘신기전’의 개발을 완수하려는 비밀결사단과 이를 저지하려는 명나라 세력의 대결이 그려진다. 고증을 살려 신기전을 실제로 쏘아올리고, 대규모 전투장면까지 포함해 제작비가 100억원에 육박하는 대작이다.

 유하 감독의 ‘쌍화점’은 캐스팅이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기대작으로 꼽혔다. 충무로에서 보기 드물게 고려시대가 배경이다. 미소년들로 구성된 왕실의 친위부대를 등장시켜 동성애까지 넘나드는 파격적인 내용이 화제가 됐다.

◆중견감독의 활약을 기대한다= 프랑스 현지에서 촬영하고 후반작업까지 거의 마친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도 기대작에 꼽혔다. 다만 “뭔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했으면” “한국의 변두리를 벗어난 홍상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첨언도 있었다.‘밤과 낮’은 갑자기 서울을 떠나 파리로 도피하게 된 화가의 이야기다.

 일본 스타 오다기리 조를 주연으로 곧 촬영을 시작하는 ‘비몽’도 김기덕 감독의 영화라는 점이 가장 큰 기대 요소다. 중국동포 장률 감독의 본격적인 한국 영화 ‘이리’가 기대되는 이유도 비슷하다. 70년대 이리역 폭발사고가 모티브로, 윤진서가 주연을 맡았다.

  강우석 감독이 최근 촬영을 시작한 ‘강철중’은 흥행작 ‘공공의 적’시리즈를 잇는 작품. 강 감독이 이끄는 시네마서비스의 최근 부진한 흥행성적과 관련해 “흥행감독의 여전한 위상을 보여줬으면” 같은 바람도 있었다. 제작 준비 단계인 박찬욱 감독의 ‘박쥐’도 때이르게 기대작에 꼽혔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흥행이 부진했으니 이번에는 만회할 타이밍”이란 의견이다.

  임순례 감독이 6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주목받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은메달을 딴 국가대표 여자핸드볼팀의 실화가 소재다.

 ◆충무로 심기일전의 원년 될까=영화인들이 가장 큰 기대의 요소로 꼽은 것은 무엇보다도 ‘새로움’이다. “안 봐도 본 듯한 영화, 기존 기획의 답습에 관객들은 매력을 못 느낀다” “지난 5년간 한국 영화가 성장한 비결이 바로 새로운 상업영화” 같은 의견이다. “불법 다운로드, 극장요금 인상 같은 외적인 문제보다 충무로 내부의 심기일전이 필요하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기대를 모으는 작품들이 대개 평균제작비를 웃도는 대작인 점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렸다. “대작영화가 충무로 부활의 신호탄이 됐으면”하는 바람과 “큰 영화뿐 아니라 작은 영화도 잘 돼야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다”는 충고로 나뉘었다.

 순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가루지기’‘고고70’‘눈에는 눈, 이에는 이’‘런드리 워리어’‘슈퍼맨이었던 사나이’‘아내가 결혼했다’‘연인’‘타짜2’(가나다 순), 그리고 평론가 정성일의 감독 데뷔작 등도 관심을 모았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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