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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를찾아서>17.조지프 니덤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은 1900년 영국 런던에서 마취전문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사립 오운들고교를 거쳐 케임브리지대학에 들어간 그는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될 예정이었지만 생화학 교수의 자극을 받아 방향을 바꿔 생화학자가 되었다. 1차대전을 겪으면서 니덤은 해군 병원에서 외과 보조로 복무하기도 했지만 의학보다는 순수과학이 더 좋았던 모양이다.24년 생화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2년 선배 도로시 보일과 결혼했다.30년을 전후해서 이미 그는 세계의 정상급 생화학자로 자라 미국의 스탠퍼드.예일 등에서도 강의했고,31년에는『화학적 발생학』이란 세권짜리 책을 내기도 했다.
대학 성적은 중간 정도.아주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던 니덤은 생명 현상에 대한 학술적 관심은 물론 종교 문제와 사회 개혁 문제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당연히 20년대 영국청년 학자들을 사로잡은 마르크스주의에도 심취했고 스 스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그런 니덤에게 중국은 갑자기 다가왔다.37년 케임브리지에 유학 온 세 명의 중국 청년 학도들과사귀게 되면서 그는 중국 문명에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의외의 열정을 가지고 중국에 빠져 들기 시작해중국어를 배웠고,42년에는 中英과학합작관 주임이라는 자리를 얻어 당시 장제스(蔣介石)의 중칭(重慶)정부에 갔다.영국이 중국에 보낸 과학원조라 할 수 있다.그 자리에서 그는 아주 자 유로운 입장에서 중국 과학기술자.역사학자들과 사귀면서 중국과학사 연구를 본격화했고 수많은 책을 수집할 수 있었다.당시 어느 중국 학자에게도 불가능한 수집이 그에게 가능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46년 유네스코가 창립되자 니덤은 과학쪽 책임자로 일하기도 했지만 바로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그후 줄곧 중국 과학기술사 정리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그러나 『중국의 과학과 문명』첫권이 출판을 기다리던 52년 엉뚱한 사건이 그의 명성에흠을 남기게 했다.그해 중공(中共)은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세균전을 벌이고 있다고 국제사회에 비난하고 나왔고 이를 조사하러 베이징(北京)에 갔던 니덤등이 증거가 확실치 않은데도 불구하고중공측 주장에 동조하는 성명을 발 표했던 것이다.이 사건으로 니덤은 미국등에서 『공산주의 선전에 쉽게 속아나는 얼간이』라는비난을 받았고 미국은 그를 블랙 리스트에 올려 입국 비자를 거부할 정도였다.니덤은 한국에도 간접적이지만 관심을 가져 한국의혼천시계를 세계적 보물이라 극찬하고 동료와 함께 연구,그 결과가 책으로 나왔다.천상열차분야지도에 대해서는 스스로 논문을 쓰고,86년에는 이런 연구 성과를 정리해 영어로 『서운관 연구』(Hall of Heavenly Records)라는 책으로 내기도 했다.니덤은 한국과학사에 관한 저서를 남긴 최초의 외국인이라고도 할만하다.그러나 그는 그의 마르크스주의 배경에다 군사독재에 대한 신랄한 입장 때문에 끝까지 한국 방문은 사양했다.
60년대 이후 사회 참여를 삼가고 중국과학기술사 연구와 저술에만 전념해 온 니덤은 87년 아내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죽자 2년 뒤 평생의 학문 반려자 루 구이전(魯桂珍)과 재혼했다.당시신랑은 89세,신부는 85세였다.37년 중국에서 유학왔던 3명가운데 한사람이었던 루 구이전은 평생을 혼자 살며 『중국의 과학과 문명』작업을 도왔던 니덤의 실질적인 최고 반려자였으나 재혼 2년만에 魯가 죽고 니덤은 다시 외로운 노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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