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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를찾아서>17."중국의 과학과 문명"조지프 니덤著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아마 21세기에 들어 가장 오래 기억될 책 하나는 영국인 조지프 니덤이 쓴『중국의 과학과 문명』이 될 것 같다.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어느 책보다도 오래 읽혀질 명저(名著)가운데 하나임이 확실하다.이 책이 명저로 기억될 이유는 분명 하다.첫째 길이가 길고,둘째 새로운 주장과 내용을 담고 있으며,셋째 특히한국인에게는 반갑지 않은 내용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책의 규모가 웅장하다.이 책은 출판된 부문만해도 아주 큰 판형으로 15책이 넘는데,앞으로도 그 정도가 더 나와 모두30책이 넘는 대작이 될 예정이다.해를 넘겼으나 올해 95세나되는 영국 학자 조지프 니덤이 쓰기 시작한 이 책은 그 규모만으로도 다른 책이 쉽게 따라잡기 어려울 지경이다.크기만으로 명작이라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역사 부문의 책만으로도 대작에는 우선 아놀드 토인비의『역사의 연구』를 들 수 있다.
하지만『역사의 연구』가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별로 참신한의미를 담고 있는 책이 못되는 것과 달리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중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그것은 서양인들이 서구 중심적세계관에 깊이 빠져 있을 때 이를 부정하는 중 대한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서구인들의 우월감에대해 아주 구체적 역사 증거를 나열해 쐐기를 박기 시작한 경우로는 이 책이 거의 처음이라 할 수 있다.현대 과학문명은 서구에서만 나온 것으로 알기 쉽지만 그 근원을 따져 보면 큰 물줄기는 중국에서도 기원했고,그 여러 문명권의 과학기술이라는 강물이 흘러 한 바다에 이른 것이 오늘의 과학기술이라는 니덤의 주장이다.마르크스적 역사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니덤은 중국의 정신적 가치를 높이 평가 해 특히 도교(道敎)의 과학성을 강조하는가하면 신유학(新儒學)의 합리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중국인 스스로 부정적으로 보던 중국의 전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게다가 현대문명의 핵을 이루는 과학기술의 싹이 중국에서 오히려 더꽃피고 있었다는 그의 주장은 50년대 이후의 중국인들에게는 그야말로 복음(福音)그것이었다.이런 뜻에서 이 책은 앞으로 명작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 확실하다.게다가 이 책이 우리 한국인에게는 더욱「명작」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니덤은 이 책의 제3권 끝에 한 쪽의 부록 설명을 붙여 한국의 과학전통을 높이평가하고,이 부문이 연구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그러나 실제로는 이 책의 여러 곳에서 그는 중국을 너무 치켜세운 나머지 한국 역사의 자랑거리를 거의 모두 중국의 것으로단정내리고 있다.측우기와 인쇄술등이 모두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식이다.이 부분은 앞으로 한국 과학기술 전통에 대한 외국인들의 의식을 거의 절대로 좌우하는 중대한 영향으로 남을 것이분명하다.유감스런 일이 아 닐 수 없다.이 책은 1954년에 제1권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출간이 계속되고 있다.제1권은 그리 두껍지 않지만 제2권부터는 대개 7백~8백쪽이나 되는 대단한 분량이다.또한 제1,제2,제3권은 각기 한 책 씩으로 끝나지만 제4권은 3책으로 구성돼 있다.그 대강을 살펴보면 다음과같다. ▲제1권(1책)중국과학기술사의 기본 배경▲제2권(1책)과학사상사▲제3권(수학.천문학.지학)▲제4권(3책)물리학과 물리기술▲제5권(14책)화학과 화학기술▲제6권(10책)생물학과생물기술▲제7권(4책)과학기술의 사회적 배경 이가운데 제4권까지 완간됐지만,제5권과 제6권이 아직 반정도밖에 완성되지 않았고 제7권은 아직 써야할 형편이다.원래 이 책은 니덤이 몇명의중국인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세계의 중국 과학기술사 연구자들의 협조를 얻어 실제로는 니덤이 제시한 방향에 따라 공동연구가 진행되고 있고,그 대표 집필자도 다 정해져있어 이 책은 잘하면 21세기로 들어 가기 전에라도 완성될는지모른다.니덤 자신은 이미 노령으로 학문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이 책이 발간되기 시작한 1954년은 한국전쟁이 끝난 바로 이듬해다.아직 중국이라는 나라는 서양에서는 거의 미개국정도로 취급되고 있던 시절이었고 한국전쟁에 중공군이 참전함으로써 그 인상은 더 악화됐다고도 할 수 있다.바로 그런 시 점에 니덤은중국 문명을 찬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15세기께까지는 서양보다 훨씬 앞선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었다.한가지씩 예로 들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과학적 지식과 기술등이 중국에서 먼저 시작돼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그는 온갖 언어로 쓰여진 사료들을 섭 렵해 판단한다.그의 이와같은 주장은 많은 사람들을 자극해 중국인에게 감동을 주었고 서양인에게는 경탄을 불렀다.니덤의『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콜린 토난이란 학자에 의해 축쇄요약판이 나오고 있기도 하며,미국의 로버트 템플은 많은 그림을 넣어 니덤의 주장을 요약 설명하는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란 대중적인책으로 내놓기도 했다.이 책은 한국에서도 지난해 번역돼 간행된바 있다(까치刊).
이 책이 나오자 마자 중국에서는 니덤과 개인적 친분이 있던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주도로 번역이 시작됐다.한국전 참전으로 더욱 피폐해진 중국의 형편에서 중국 문화의 자존심을 높이는 일은 대내외적으로 아주 중요한 그런 시절이었다.
중국에서만 번역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대만에서도,그리고 일본에서도 번역을 시작했다.우리나라에서는 제1권이『중국의 과학과 문명』(1985)이란 제목아래 출간된 이래 제2권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Ⅱ』(1986),『중국의 과학과 문명』 (1988)의 두 책으로 나뉘어 간행된 바 있다(을유문화사刊).
니덤이 수집했던 책과 자료들은 지금 케임브리지 대학 동아시아과학사도서관에 보관되었고,이를 모체로 1983년 니덤연구소가 정식으로 발족외었다. 주로 홍콩과 싱가포르의 중국계 자금을 얻어 건물을 세웠고,지금은 중국계 何丙郁교수가 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이연구소에는 또 서양학자와 중국인 과학자.학자들이많고,최근에는 일본 학자들이 상주하며 학위과정을 밟고 있지만 한국 학자가 상주하는 일은 없다.
주로 홍콩.싱가포르의 중국계 인사들의 기부로 지탱되고 있는데일본의 경우는 일본.영국 협력재단이 해마다 몇명의 일본학자를 여기에 파견하고 있다. 니덤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우리 학자들을 파견할 준비를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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