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유산을찾아서>2.靑華白瓷鐵砂 포도다람쥐무늬항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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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패션의 거리로 유명한 도쿄(東京) 시부야(澁谷)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도쿄대학교를 낀 조용한 주택가 고마바(駒場)가 있다.
이곳에 외국 관광객 가운데서도 좀더 깊이있는 일본의 맛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찾는다는 작지만 유서깊은 미술관이 있다.1936년에 세워진 일본민예관이다.
일본인들은 묵은 것도 마치 새것처럼 포장해내는 재주를 지녔다지만 이곳만큼은 과거 일본문화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크지 않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주택들 사이에 전형적인 일본 목조주택의 모습 그대로인 일본민예관에는 늘 유약상태가 엉성한 일본의 전통도자기와 기하무늬의 연속일뿐 단조롭기 그지없는 일본의오래된 염직물들이 상설전시돼 있다.일품(逸品)이 나 명품들이 들어앉아야 마땅할 미술관으로서는 분명 낯선 풍경이다.그러나 이곳은 「위대한 평범(平凡)」이라는 민속예술품의 아름다움을 종교적 신념처럼 믿고 전파했던 설립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의 철학이 담긴 전시관 이다.일본민예관의 크고 작은 9개 전시실 가운데는 특별전 때에도 상설전시를 계속하며 특별대접을 받는 방 하나가 있다.
한국의 전통공예품을 모아놓은 2층 「이조공예전시실」이다.조선시대 분청사기.순백자.목기.옹기항아리등이 빛을 내며 소개되고 있는 이 전시실에는 일본민예관이 자랑하는 한국도자기 한 점이 있다. 청화백자 철사 포도다람쥐문 항아리.
노르스름한 백자 바탕위에 철사안료로 시원스럽게 포도잎을 그리고 새파란 청화로는 듬성한 포도송이와 포도알의 시큼한 맛을 탐하려는 다람쥐 한마리를 그린 항아리다.듬직한 크기도 크기려니와어깨에서 발치로 흐르는 선은 둥글둥글 원만하고 넉넉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며 그 위에 그려진 멋들어진 그림은 감탄사를 절로 나게 한다.
이항아리는 이곳의 민예철학에 꼭 들어맞는 자랑거리이기도 하지만 설립자 야나기와는 뗄수없는 인연을 갖고 있는 유서깊은 물건이다. 1910년대 특유의 관념론으로 일본의 지식청년들을 사로잡았던 잡지 『백화(白樺)』동인이었던 야나기는 철학.문학.공동체운동등 각 방면에서 활동한 동인들 가운데 민예운동이란 독창적영역을 개척한 미술평론가이자 종교사상가다.「민예」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쓰고 민예운동이 현실속에 뿌리를 내리도록 그의 생각을영글게 한 민속예술품의 실체가 바로 이 한국의 공예품들이다.
런 조선공예품을 처음 그에게 소개했던 사람은 『백화』의 애독자며 아마추어 조선도자연구가였던 아사카와 핫쿄(淺川伯敎.1884~1964)였다.아사카와는 조선자기에 매료돼 한국으로 생활터전을 옮길 정도로 조선자기의 예찬자였으며 야나기가 한국도자기를첫대면할 수 있도록 주선한 인물이었다.
야나기는 이 만남을 통해 「선(線)의 미학」과 「슬픔의 아름다움」이라고 이름붙인 특유의 한국미술론을 만들어내고,『이름없는사람들이 만든 생활용품속에 지순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 민예운동의 핵심적 사상을 끌어내게 된다.야나기와 아사카와의 만남은 1914년 아사카와의 방문으로 처음 시작된 이래 야나기가죽을 때까지 계속됐는데 이 항아리는 바로 그 아사카와가 야나기에게 1924년 선물했던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정양모(鄭良謨)관장은 이 항아리를 가리켜 『형태.유약.기형등 모두가 뛰어난 걸작』이라며 『소탈하면서도 당당한 자태는 조선후기 새로운 문화가 꽃핀 18세기의 대표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특히 『솜씨있는 화가가 바람처럼 붓을 놀려 달빛어린 포도잎을 단숨에 그려낸 모습에는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푸근함이 배어있다』며 위대한 평범속에 빛나는 한국의 걸작임을 말하고 있다.
[東京=尹哲圭특파원] 자문위원:鄭良謨(국립중앙박물관장) 安輝濬( 서울대박물관장 ) 洪潤植( 동국대물물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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