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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부자학 ①] 미술과 기부에 푹빠진 ‘청담동 사모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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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돈이 넘쳐나고 집값이 폭등해 평범한 샐러리맨 중에서도 10억원 대 아파트를 소유하게 된 요즘, 부자라고 다 같은 부자가 아니다. 요즘은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쯤 되야 대접받는 시대가 됐다. VIP를 한 단계 뛰어넘는 부자 중의 부자, 최상위 부유층을 일컫는 이들은 당장 결제할 수 있는 현금만 최소 10억원, 평균 자산으로는 30억~40억원 이상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아파트 분양, 신용카드, 백화점, 호텔등 업계는 이들을 겨냥한 'VVIP 마케팅'에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서울 강남의 대표적 부촌인 청담동 일대 금융가도 요즘 ‘VVIP’ 고객 잡기에 여념이 없다. 강북의 성북동ㆍ평창동에 전통 부자가 많다면 청담동에는 고학력 전문직과 젊은 감각을 소유한 신흥 부자가 혼재돼있다. 이곳의 ‘청담동 피플’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예술에 민감해 감성적이며 ‘졸부’의 이미지를 벗어나 품격을 지키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관심이 많다. 돈+α를 소유해 부자들 중에서도 유난히 자긍심이 세다는 ‘청담동 피플’의 삶을 일대 프라이빗 뱅커를 통해 엿봤다.

◇나눔과 예술에 관심 많고 서비스엔 까다로워= 하나은행 청담애비뉴 장정옥(42) 지점장은 부유층 PB(Private Banking) 10년 경력을 바탕으로 지난 2월 국내 최초로 여성 PB 고객 전문 지점을 열었다. 웨딩숍과 갤러리 등이 밀집한 거리에 자리잡은 은행 입구는 현대 화가의 작품이 걸려 있어 겉보기엔 영락없는 갤러리다.

간단한 미니바가 설치돼 있고 다이아몬드 목걸이ㆍ귀걸이 등 귀금속을 보관하는 ‘사모님’ 개인 대여금고 250개가 있다. 보석을 꺼내 바로 착용할 수 있도록 옆에 파우더 룸을 갖추는 등 여성 고객의 편의를 배려했다. 딱딱한 은행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감수성을 파고든 것이다. 장 지점장은 “감성의 세심함과 고급스러움을 지점 운영 핵심 컨셉트로 잡았다”며 “특히 타겟 고객인 여성 VIP고객층에게 거래 금융기관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심어주고, 상류층 소속임을 확인시켜주는 데 주력했다”고 전했다.

장 지점장은 10년 경력의 노련한 PB 전문가다. 그는 ‘청담동 피플’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봉사 활동 등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VVIP가 생각보다 많다”며 “적법한 범위 안에서 사회에 환원하는 쪽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높은 인품과 식견을 지니고 있어 상품ㆍ서비스 공급자의 입장에서 매우 까다로운 고객”이라며 “그러나 그만큼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VVIP’들은 또 예술적 감수성이 특히 풍부하다. 장 지점장은 “이들은 미술 작품이나 와인 등에 관심이 많아 매우 감성적”이라고 전했다. 또 고학력 소유자에다 사회적으로 오피니언 리더급이 많다.

자녀는 대부분 유학을 다녀와서 컨설팅 업계 등 고급 경영인력이나 법조인ㆍ의사로 성장한다. 장 지점장은 “이들의 자녀 혼사도 대부분 비슷한 환경 내에서 이뤄진다”며 “본인이 사회 지도층이거나 학맥ㆍ인맥ㆍ혼맥 등을 통해 사회 지도층에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들만의 커뮤니티서 정보·인맥 교류= ‘VVIP’들은 ‘VVIP’끼리 어울린다. 종종 PB 전문 은행은 그들끼리 유유상종할 수 있도록 따로 친목 도모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이들은 경쟁업체 내에서도 ‘VVIP’인 경우가 많고 다양한 문화 이벤트 행사에 초대되는 경우가 많다. 은행들은 그들만을 위해 와인 선상 파티, 전략적 자산배분전략 강좌를 비롯해 독특하고 새로운 주제의 교양 행사를 따로 마련해주기도 한다.

지난달 18일 저녁 청담동에서 열린 주얼리 브랜드 ‘뮈샤’ 연말자선 파티도 이같은 행사 중 하나다. 수익금 일부를 홀트 아동복지회에 기부하는 이번 행사에는 김혜수ㆍ한고은 등 유명 연예인과 하나은행 청담애비뉴 지점 ‘VVIP’들이 대거 참석했다. 대부분 50~60대 여성인 이들은 외부에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 선에서 파티를 즐기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느긋한 성격에 신앙 실천=행사장에서 만난 A(강남구 압구정동)씨는 수더분한 인상에 느긋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취미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골프장을 찾는 것. A씨는 “골프장에 나가면 또 다른 커뮤니티가 생긴다”며 “전자ㆍ법조ㆍ의료계와 회계사 등 다양한 인맥을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 6월 미국 유학을 마치고 최근 취업한 28세의 외동딸이 있지만 그녀는 딸의 혼사를 서두를 생각이 없다고 했다. A씨는 “회사에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고 나중에 좋은 사람이 생기면 차차 결혼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보수적 성향의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고 벤츠를 몰았다. 혈액형은 AB형, 종교는 기독교였다.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CEO 남편도 차분하고 느긋한 성격에 바둑을 즐긴다고 말했다. 요즘엔 사설 유치원 아이들을 돕는 기부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B씨(송파구 삼전동 거주)는 동대문 일대에서 패션 원단 관련 상업을 하는 경우였다. 청담동에 살지는 않지만 VVIP 고객 중에서도 꽤 많은 자산을 청담 애비뉴에 맡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정색 모피 코트 차림의 그녀는 “평소에 시간이 잘 나지 않는 편이지만 에어로빅 등 틈 나는 대로 건강과 여가에 전념한다”며 “투기ㆍ부동산은 절대로 하지 않고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번 돈 만큼은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강조했다. 그녀의 혈액형은 A형, 종교는 불교였다.

이날 행사의 VIP게스트로 참석한 패션 디자이너 케이 킴도 청담동 일대에서 부와 명성을 이룬 신세대 ‘청담동 피플’이다. 프랑스ㆍ영국 등 유럽 유학파 출신인 그녀는 청담동 일대에서 ‘케이킴 부띠끄’ 두 곳을 운영하며 국내 유명 인사의 패션 컨설팅을 맡고 있다. 한 눈에 들어오는 외모에 발랄한 성격을 지닌 케이 킴은 강남에서 트렌드 리더로 통한다. 그녀는 “성공은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며 “바쁜 일상을 살기에 요즘에는 어떻게 하면 정신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고 전했다. 기독교 신자라는 그녀는 “연해주에 있는 개척 교회를 돕거나 입양아의 학비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연말에는 작품을 경매로 내놓아 수익금을 나눠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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