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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사진작가 데뷔 이창규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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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가톨릭 신부가 사진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뒤늦게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주인공은 지난 20일 경일대 대학원 사진영상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대구 성산천주교회의 이창규(李昌奎.42.세례명 마티아)주임신부.

"신학.철학과 사진영상 사이에는 상당한 연관성이 있어요. 똑같이 세상을 바라보지만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진을 학문적으로 한번 공부해 보고 싶었습니다."

가끔씩 기도 중에 머릿속에서 카메라 렌즈가 떠오를 정도로 '사진광'이 됐다는 李신부는 다음달 서울 인사갤러리(3월 3~9일)와 대구 맥향화랑(3월 16~24일)에서 졸업 작품전을 겸한 화랑 초대전을 개최, 사진작가로도 입문한다.

초대전은 화랑이 대관(貸館)과 팸플릿 제작 등 모든 경비를 본인이 부담하기 때문에 중견 작가라도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이 두 화랑은 작품 선정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곳. 그래서 그는 '기쁨 반, 두려움 반'으로 전시 준비를 하고 있다.

작품전 제목은 '위리안치'(圍籬安置. 탱자나무 울타리를 둘러 가택연금을 시키는 것)다. 위리안치는 제주도 유배지로 떠나는 추사 김정희에게 내려진 처벌이었다. 이 용어에서 보듯 李신부는 추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가 추사를 처음 접한 것은 1990년 사제서품을 받을 때였다. 사제관의 당호(堂號)가 필요해 이리저리 찾던 중 추사가 남긴 글씨 '소창다명'(小窓多明. 작은 창으로 많은 빛이 들어오다)이 마음에 들어 택했다는 것.

"추사는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제 사진엔 그래서 고통을 상징하는 탱자나무와 마비를 뜻하는 얼음판이 등장합니다."

탱자나무 사진은 李신부가 군위 성당에 재직할 때 찍은 것들이다. 지금까지 찍은 필름만 라면 한상자 분량이다. 갖고 있던 니콘 카메라가 너덜너덜해져 얼마 전 하셀 카메라를 구입했다고 한다.

李신부는 "앞으로 사진 등 영상매체를 피정(避靜.성당이나 수도원 등에서 조용히 장시간 기도하는 것을 뜻하는 천주교 용어) 등에 활용할 것"이라며 "대구라는 도시를 사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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