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있는풍경>"한택식물원" 이택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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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잎을 모조리 떨궈내 가슴팍 깊은 곳에 박힌 돌뿌리까지 남김없이 보여주면서 아무 치장없이 꺼칠하고 척박한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겨울산야는 겨울여행객들의 심사를 편하게 해준다.한국의 온갖 토박이 야생초들이 한데 모여 깊은 동면 을 취하고 있는 한택식물원(경기도용인군외사면옥산리산153)으로 가는 길은고향가는 길을 닮았다.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일죽인터체인지(서울시청에서 93㎞거리)에서 내려 안성 가는 쪽으로 4㎞를 가다 식물원의 작은 표지판을 보고 오른쪽으로 꺾어져 이어지는 3㎞의 논길.산길은 먼 기억 속으로의 여행이다.
몇번이고 차를 쉬어 물어 물어 찾아든 식물원은 비봉산 구릉에폭 싸여 있어 밖에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12만평의 구릉과 초지에 자리잡은 식물원에는 한국 산야에 자생하는 토박이 야생초들이 멸종의 위기에서 피난을 하고 있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3천7백여종의 식물중 북한에 서식하는 것,나무류.고사리류 등을 뺀 나머지 9백여종(수십만본)의 야생화가전국에서 이사를 와 있는 곳이다.
자주빛 꽃봉지를 매단 개불알꽃,가녀린 흰 꽃잎이 고상한 섬노루귀,연보라색 꽃잎에 노란 꽃심이 화사한 깽깽이풀,동그란 요강단지를 매단듯한 광릉 요강꽃… 이곳에는 환경부가 멸종 위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1백여종 의 야생화도일찌감치 터를 잡고 보란듯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1월중에도 꽃을 피운다는 복수초를 제외하고는 모두 납작하게 엎드려 봄을 기다리고 있다.이곳에 마구잡이개발과 남획으로 사라져가는 야생화들이 모두 모인 것은 한양대 토목학과를 졸업하고 한때 건설회사의 직원이었던 이택주(54)씨덕분이다.
지난 78년 사업가의 꿈을 안고 선친이 물려준 이 땅에서 축산업을 했던 그는 소파동 등으로 인해 가산을 탕진한후 산사태도막고 빚을 갚을양으로 조경용 나무를 심는 한편 주위의 권유로 1백여점의 야생화를 채집해 심기 시작했다.
그는 끈질긴 생명력과 풀이슬을 머금은듯한 야생화들의 아름다움에 반해 아예 사라져가는 이땅의 토박이 야생화들을 모두 보존하자는 생각으로 지난 10여년간 전국을 헤집고 다녔다.난쟁이 붓꽃이 자라는 설악산 향로봉으로,두메부추를 찾아 울 릉도로,고산지대에만 자라는 고산술패랭이를 찾아 한라산으로….
그는 올해 울릉도에서 사라져가는 고추냉이를 3천여본 되심는 복원작업도 했다.내년에는 솜다리(에델바이스)자생처인 설악산 권금성 바위틈에 5백여본의 솜다리를 갖다 심어 멸종을 방지할 계획이다. 『자생식물이 제대로 터를 잡아야 곤충과 동물도 살 수있습니다.특히 우리나라 9백여종의 야생화중 6백여종은 식용으로,또 7백여종은 약용으로 쓸 수도 있으니 농산물 개방시대를 대비하는데도 좋습니다.』 우리나라에 자생식물을 볼 수 있는 제대로 된 식물원이 하나도 없다고 아쉬워하는 李씨는 내년이나 내후년께 식물원을 일반에 본격적으로 공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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