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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띠 걷어내고 또 굴 캤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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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방제작업이 한창인 태안에 눈이 내렸다. 망산마을 갯벌의 굴양식장에서 방제작업을 하던 할머니들이 바닥에 쌓인 굴 껍데기 위에 서서 뱃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직 제거하지 못한 기름 때가 바위를 검게 물들이고 있다. 왼쪽부터 여영숙(63)·서종숙(64)·권계순(65)·문연순(78) 할머니. [사진=김성룡 기자]

세밑을 하루 남긴 30일, 태안에 눈이 내렸다. 망산마을 갯벌의 검은 기름 위에도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3구 망산마을에는 60호 정도의 가구가 모여 산다. 갯벌에 나는 굴을 캐서 먹고사는 마을이다. 하지만 갯벌은 기름으로 숨이 막혔다. 묻혀 있는 굴은 모두 '죽은 굴'이 됐다.

절망만이 가득할 것 같은 그곳, 갯벌 어디에선가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낙들이었다. 음정은 귀에 익숙한 뱃노래였지만 노랫말은 달랐다. '지름(기름)배는 왜 깨져서리 이 고생을 시키나'라는 구슬픈 가사가 울렸다. 그럼에도 '우리 새끼들 노트 사주고, 그래도 살아야지'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검은 기름 위의 하얀 눈처럼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살리려는 노랫말이 도드라졌다.

뱃노래를 부르는 아낙들은 모두 할머니들이었다. 대부분 수십년 전 이 마을로 시집와 평생 굴을 캐고 살았다. 그 굴로 자식들을 키웠고, 집안살림도 늘려 왔다.

문연순(78) 할머니는 광복을 한 해 앞둔 1944년, 열다섯 앳된 나이에 망산마을로 시집 왔다. 한국전쟁이 나기 전 할머니는 이미 아이 셋을 뒀다. "그땐 무식해서 생기는 대로 낳았다"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전쟁 터진 해, 섣달 스무날. 깃발을 든 사람들이 와서 남편(장광석.84)을 데리고 갔어. 징집이었지. 그로부터 6년이나 소식이 없다가 느닷없이 집에 돌아왔어." 할머니는 그때의 막막함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답답하다.

할머니는 소문난 '굴 까기 선수'다. "나만큼 잘 조숴서(까서) 탁 내놓는 사람 없어. 한창 (굴이) 날 때면 하루에 6, 7만원도 벌어." 굴 1㎏을 까면 2500원을 받는다.

할머니에게는 굴 양식장이 없다. 4년째 위암 투병을 하는 할아버지 뒷바라지를 하느라 모아 놓은 돈도 없다. 하지만 쉼 없이 굴이 나오는 갯벌과 타고난 손재주가 할머니를 살 수 있게 했다. 이제 굴이 없어졌지만, 할머니는 드러누울 수 없다. 할머니에게는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나이 마흔에 낳은 막내아들(38)이다. "IMF 때 연락이 끊겼어. 할아버지를 6년 기다렸는데, 이놈은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 갯벌이 살아나서 다시 굴을 캐면 막둥이도 돌아오겠지?" 갯벌은 할머니에게 생명의 언덕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언덕에 기대 막둥이를 기다리고 싶다.

뱃노래를 함께 부르던 권계순(65)씨도 4년 전부터 아들(44)과 소식이 끊긴 상태다. 아들은 운영하던 가게가 망하자 이혼한 뒤, "나중에 찾으러 오겠다"는 말과 함께 딸 아이 둘을 남겨 놓고 떠났다. 손발은 시리고,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이지만 권씨는 초등학교 6학년 큰 손녀(12)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얼마전 학교에서 글짓기 발표를 했는데 만리포.천리포까지 얼마나 기름이 퍼졌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와서 도와줬는지 그렇게 잘 썼을 수가 없어. 애가 똑똑해. 나보고 사랑한디야. 대학까지 시켜주고 죽을라고." 권씨의 작은 손녀는 이제 1학년이다. '이 아이들 때문이라도 오래 살아야겠다'고 되뇌는 권씨의 입가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기름이 덮친 망산마을. 그러나 마을 앞 갯벌이 울음바다는 아니었다. 할머니들은 일을 하다 간간이 뱃노래를 구성지게 뽑아 냈다. 소식 끊긴 자식, 그들이 남기고 간 새끼들. 그 막막한 상황이 오히려 노구를 꼿꼿이 버티게 해주는 희망이 됐다.

주말이지만 망산마을에 10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찾아왔다. 대구에서 친구들과 왔다는 정현숙(36)씨는 "이거 무지 따시예"라며 권계순 할머니에게 양말 세 켤레를 건넸다.

옆에 있던 여영숙(63) 할머니는 작업복을 풀어헤치더니, 핑크빛 트레이닝복을 내보이며 "이것도 어떤 아가씨가 주고 간 거여"라고 맞장구를 쳤다. 어떤 아줌마는 두부 한 모를 들어 보였다. 이들에게 갯벌은 '잠시' 죽어 있는 것이었다. 문연순 할머니가 대차게 한마디 한다. "내 평생 다시 못 만져 볼지 모르지만, 너희들은 아직 젊으니까."

"우리가 젊대. 저 노친네 하하."

눈발과 함께 2007년이 저물어 갔다.

글=강인식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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