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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는 운명론 아닌 인생예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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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회의원 이철용(59)씨는 지금 ‘통(通)’이라는 이름의 점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경력은 다채롭다. 야학 학원 원장을 지냈고 빈민운동을 하다 13대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어둠의 자식들』 등 16권의 저술이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정작 그 자신은 책을 열심히 읽지는 않는다고 한다. 내세울 학력도 없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상당한 지력(知力)이 느껴진다. 정치와 역술의 세계를 모두 경험한 그를 만나 사주와 개인 그리고 사회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사주와 운명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십니까?

사주는 운명론이 아니라 ‘인생관리학’입니다. ‘인생예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었다면 우산을 준비하고 나가거나 아예 외출을 안하면 됩니다. 일기예보가 빗나가는 것처럼 사주도 그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일기예보가 필요한 것처럼 ‘인생예보’도 필요합니다.

사주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사주는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절망에는 비상구가 필요합니다. 그런 생각에 이 점집 이름도 ‘통(通)’이라고 지었습니다. ‘궁즉통(窮則通)’에서 따온 거죠. 시간은 흐릅니다. 사람의 대운 세운은 바뀝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나는 내 직업이 ‘희망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내 개인 체험도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30세에 혼자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지 6개월 후에 돌아가셨죠. 그리고 나는 결핵성 관절염으로 지체장애 3급의 장애인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기관에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죠. 사주는 또 사람들이 흔히 잘 믿는 혈액형에 따른 성격이라든가 사상의학보다도 훨씬 강력하고 자세합니다.

사주는 무엇을 할 수 없습니까?

개인의 문제에는 당연히 사회의 병리현상이 연루됩니다. 그러니 개인의 문제를 사주로만 풀어서는 안 되고 사회와 사회과학이 함께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사주를 봐줄 때 의뢰자가 태어난 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핍니다. 그가 어떤 세상 기운을 타고났는지 보는 거죠. ‘사주제일주의’는 위험합니다. 사주보다 절제가 더 중요합니다. 식탐이나 욕심을 없애고 언동을 조심해야죠. 또한 사주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면 그 힘이 약화됩니다. 사주가 발전한 송나라, 명나라 때와 지금이 다른 만큼 사주도 발전하고 바뀌어야 합니다. 자연과학·통계학적 방법을 많이 원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통계자료를 꾸준히 모으고 있습니다. 한때 1만 건 이상을 모았는데 시(時)를 모르거나 음력인지 양력인지 불확실한 것을 제외하니 1100~1200개 정도가 됐습니다.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쓸 예정입니다.

점을 보러 오는 손님들에게 나타난 사회상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소위 말하는 천민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추세가 복잡하게 얽혀서 왜곡 현상이 일어납니다. 재물에만 지나치게 관심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에이즈 바이러스, 이념 바이러스, 잘못된 신앙 바이러스도 무섭습니다만 제일 무서운 것은 ‘자본’ 바이러스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은 허위 사주를 유포시키기도 한다는데 사실입니까?

시(時)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것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 대해서는 사주와 연관시켰을 때 어떻게 보셨습니까?

선출직의 경우 사주만 가지고 예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번 대선은 ‘진보에 대한 염증’ ‘민주 진영에 대한 실망’이 부각된 선거입니다. 남북관계, 한·미관계, 지역주의, 양극화 문제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사주만 따지면 이회창 후보의 사주가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이회창 후보에게 대운과 연운이 다 좋은 해였습니다. 그는 2014년까지 쭉 뻗어나갈 겁니다.

다른 역술인과 ‘차별화’되는 ‘전략’ 같은 것이 있으십니까?

나는 색상을 중시합니다. 의뢰인에게 부족한 기운을 채워줄 수 있는 색상을 찾아주는 거죠. 색깔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지만 검은색은 색을 흡수하고 흰색은 반사합니다. 그만큼 색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손님에게 필요한 기운을 채워주는 그림을 직접 그려주기도 합니다. 맞춤형 ‘그림 부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나는 잘 돌아다닙니다. 나는 책을 16권 썼는데요. 픽션이라기보다는 ‘세상 보고서’와 같습니다. 세상이 바로 책입니다. 세상에 대해 잘 알아야 운세도 잘 봐줄 수 있습니다.

색상 말고 좋은 운을 부르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사주와 약간 거리가 있는 말이지만 나는 운이나 복은 잠들 때 온다고 봅니다. 그래서 잠자리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관문도 정돈을 잘해야 합니다. 잘 안되는 집은 현관문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잘 웃어야 합니다.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서 역술인들은 사주명리학 말고도 다른 점술을 공부하기도 한다는데요. 나는 관상, 안색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손님이 문지방을 넘어올 때부터 관찰합니다.

정치의 세계와 역술의 세계를 모두 체험한 입장에서 국운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사람들의 얼굴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길 가다가 보면 양극화 등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금 국민의 관상이 참 좋습니다. 나는 삼성병원 신생아실에 가는 걸 좋아합니다. 신생아들의 관상도 참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앞날은 밝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정치를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이제 정치가는 전문가 집단에서 나와야 합니다. 세계와 당당히 씨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인이 돼야 합니다. 시대가 달라져 나는 그런 실력이 안 됩니다. 민주화 운동 경력만으로는 이제 안 됩니다. 의정생활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고 성과가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실컷 해봤습니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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