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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독자 배려하는 시대정신 담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2호 14면

초기 신문의 판형은 그 사회에서 생산되는 신문용지의 규격, 생산량, 신문사의 인쇄시설과 같은 외적 요소에 따라 결정되었다. 이 땅에서 우리 손으로 만든 첫 신문 ‘한성순보’(1883.10.31)는 가로·세로가 대략 20×27㎝ 정도였다. 오늘날 가장 흔히 쓰이는 A4용지보다 약간 작은 사이즈 20 내지 24쪽 분량을 묶은 책자 형태였다.

서재필 선생의 ‘독립신문’(1896.4.7)도 23×31㎝ 정도였으니 오늘의 용지 규격으로 정확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신기하게도‘중앙선데이’의 새 판형 베를리너(新중앙판)의 절반 사이즈인 ‘매거진’과 거의 맞아떨어지는 크기였다. 그후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신문은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였다. 한말에는 판형이 조금씩 늘어나다가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일본의 종이 규격과 인쇄 기술에 종속되었기 때문에 대체로 오늘날과 비슷한 판형으로 정착되었으나 태평양전쟁이 터진 후 극심한 종이 부족으로 타블로이드 2페이지까지 줄어들었다. 광복 후에도 타블로이드에서 시작하여 겨우 대판으로 커졌으나, 6·25 전쟁으로 다시 타블로이드로 오그라들었다가 대판으로, 작아졌다 커졌다를 몇 차례 반복하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앙일보의 베를리너 판형 도입은 종이의 수급에 따르는 경제적인 요소나 인쇄시설이라는 하드웨어적인 제약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결정이다.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이 판형의 채택은 사회문화적인 흐름과 언론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고 선도하겠다는 과감하고 실험적인 결단이라 할 수 있다. 편집에도 독창적이고 새로운 기법이 나타날 것이다. 새 판형에 현대적 편집 기법을 활용하여 국가 사회의 어젠다를 담을 수 있다면 독자들의 호응도 클 것이다. 신문 시장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혁신적인 시도라 하겠다.

권위지는 판형이 커야 하고, 타블로이드판은 대중지라는 등식은 서양 신문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고정관념은 유럽에서 이미 완전히 무너지고 판형의 변화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진보적인 신문이라는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 판형이 신문의 성격을 규정하던 시대는 지난 것이다. 중앙SUNDAY의 판형 변경은 한국 언론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용기 있는 개척정신의 발로로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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