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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나진.선봉 개발계획과 현황-기업들 분주한 北上채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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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L그룹의 의류품질 관리팀 C대리가 방북길에 올랐다.북한 남포공단에 지은 의류공장에 6개월 장기파견근무를 위해서다.비행기는 작년말 개설된 한중(韓中)직항편을 탔다.베이징(北京)공항에 내리자마자 북한대사관으로 가 간단한 비자발급 절차를 마친 후 곧바로 고려항공을 이용,순안공항으로 날아갔다.서울에서 아침식사를하고 베이징공항 스낵코너에서 점심을 해결한 C대리는 기내에서 고려항공 스튜어디스가 건네준 노동신문을 읽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평양에 도착한 C대리는 평양 L그룹 사무소에서 정해놓은숙소에 여장을 풀었다.서울출발 꼭 10시간만에 북한땅을 밟은 것이다.」 기업체의 북한담당자들이 가상으로 그려 본 북한왕래 모습이다.당장은 어렵겠지만 그리 먼일만도 아니라는 얘기들이다.
중소업체인 시피코社가 추진해 온 북한 나진.선봉지구 철조망공급이 마무리돼 울타리 설치작업이 잘 끝나면 이 지역 무비자 입국도 곧 가능할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쌍용그룹 투자조사단이 지난해 12월13일 남북경협 재개이후 처음으로 방북,나진.선봉지구를 둘러보고 오자 재계는 올해가 실질적으로 「남북경협 원년」이 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이에따라그동안 추진했던 방북 및 투자계획과 북한팀 전열 을 다시 정비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명예회장등 그룹 총수들이직접 북한으로 건너가 나진.선봉지구 투자계획이나 금강산개발.북한물자 반입등을 성사시킬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그럴 경우 실무기술자들의 방북은 당연히 뒤따르게 된다.
물론 방북허가를 이미 따낸 삼성.현대.럭키금성.쌍용등을 주축으로 한 기업인들의 방북도 줄을 이어 북한투자가 탐색차원의 임가공무역 수준에서 벗어나 직접투자쪽으로 전환될 것이다.또 김일성(金日成)이 생전에 국내기업인들에게 약속했다는 금강산개발.남포공단개발도 구체화되면서 무역진흥공사가 추진중인 나진.선봉지구무역사무소 개설도 햇빛을 볼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의 뜨거운 진출경쟁 삼성그룹은 최근 북한팀을 그룹조직인 해외사업단으로 옮겼다.당초 방북단에 포함됐던 김정순(金正淳)제일제당 사장이 작년말 인사 때 삼성라이온즈 회장으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방북단도 재구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은 한때 나진.선봉지구에 항만.도로등 인프라투자 계획을 검토했으나 임가공무역쪽으로 우선 방향을 틀고,나아가 통신.
전자부품 조립공장건설등에 단계적으로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방북시기는 북한의 초청일정에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1 월 중순께가유력하며 평양사무소 개설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현대그룹은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가 해소되면 鄭명예회장의 방북을 우선 추진한다는 복안이다.이를 위해 鄭명예회장을 대신해 작년 여러차례 중국을 다녀온 이춘림(李春林)현대상사 회장이 북한측과 꾸준한 대화통로를 가지는등 다른 그룹과는 달 리 몇몇 고위경영자 중심의 북한진출계획을 짜고 있다.남포공단 투자로 일찌감치 대북투자의 기선을 제압한 대우그룹은 다소 느긋한 편이다.
조사단조차 파견못한 그룹이 많은데 비해 남포공단 사업자승인을 이미 따낸 대우는 곧 통일원에 사업시행 을 위한 허가절차까지 밟을 계획이다.
럭키금성그룹은 생필품.섬유등 경공업위주로 중소기업과의 동반진출을 적극 모색중이다.이미 공개모집을 통해 1차선정 절차를 마치고 북한투자 계획을 절충하고 있으며 방북시기는 당초 계획보다앞당겨 늦어도 3월께로 잡고 있다는 것.
그밖에 한화그룹도 회장비서실을 중심으로 김승연(金昇淵)회장의방북을 은밀히 추진중이다.경우에 따라선 2월전에 북한으로 건너갈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또 신세계등 백화점업체들이 북한에 호텔을 짓거나 북한특산품 매입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경협의중(意中) 북한당국은 기본적으로 남북경협은「조용하고 차근차근」진행시키겠다는 의도다.우리가 앞다퉈 방북투자경쟁을 벌이는 것과는 달리 북한측은 나름대로 업종별 투자유치기업에 대한 선별작업을 해둔 상태라는 뜻이다.
북한인사들과 접촉한 한 기업인은 『남쪽 언론에 사업내용이 공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조용하게 일을 진행하기를 요구했고대신 약속은 꼭 지킨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실제 북한에서 쌍용그룹을 신뢰하는 것은 ㈜쌍용의 손명원(孫明源) 사장가계(家系)가 맺고 있는 김일성과의 인연외에 2년여에 걸친 협상과정을 철저히 함구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경협 진전이 북한체제를 흔드는 것까지는 원치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체제안정을 위한 경제난해결이 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남북대화가 재개되는등 여건이 호전되면 뜻밖의 남북경협 청사진을 내놓을지도 모른다고 북한전담 기업인들은 관측한다.
〈관계기사 26面〉 〈高允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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