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행복한책읽기Review] 세월 흐른 뒤 고전으로 남을 ‘올해의 명저’ 5권 뽑았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인문·사회=21세기는 통합의 시대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식의 대통합을 꿈꾸는 ‘통섭’이 각광을 받는다. 그 같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한 『생각의 탄생』(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에코의서재)은 큰 호응을 얻었다. 미국 미시건 주립대 생리학과 교수부부가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손꼽히는 천재들의 발상법을 정리한 덕분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르셀 뒤샹 같은 미술가,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만 등 과학자,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 등 문화 각 분야의 대가들이 망라됐다. 발상법을 관찰, 형상화, 추상, 패턴 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 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의 13단계로 나눠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직관과 상상력을 키우는 방법까지 더해 창조적 사고가 필요한 이들에게 꽤 유용하다.

◆경제·경영=『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부키)은 실질적인 ‘올해의 책’이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사다리 걷어차기』『쾌도난마 한국경제』란 베스트셀러를 낸 지은이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거의 유일한 한국 경제학자인데다 보통사람들을 위해 쓴 첫 경제교양서란 점이 인정 받은 듯하다. 신자유주의에 휩쓸려 가는 현대인들의 궁금증을 콕 집어내 쉽게 설명한 것이 강점이다. 공기업 문제를 과연 민영화로 풀 수 있는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자유무역이 개발도상국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지, 경제를 개방하면 외국인 투자가 정말 늘어나는지 등을 널리 알려진 영화 등을 이용해 풀어냈다.

◆문학=다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한국소설 중 올 한해 가장 많이 팔린 『남한산성』(김훈 지음, 학고재) 대신 『바리데기』(황석영 지음, 창비)가 선정됐다. 한국 소설로는 드물게 스케일이 큰 서사구조를 취하면서 설화를 바탕으로 하되 북한난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북한 청진에서 지방 관료의 딸로 태어난 ‘바리’는 태어나자 마자 버려지고, 풍산개에게 구조되고, 탈북 후에는 동아시아와 대양을 넘어 영국 런던에까지 이르는 등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이 과정에서 절망과 폭력, 전쟁과 테러 등 21세기 보편적 문제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묵직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힘있는 문장,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등 숨가쁘게 진행되는 스토리가 소설적 재미를 충분히 보완했다.

◆과학·실용=미국의 타임지가 “전 세계가 함께 읽어야 할 올해 최고의 논픽션”이란 극찬을 받았던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지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에 표가 몰렸다. 인류가 자연과 대결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지구상에서 인류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란 질문에 과학적인 답을 모색했다. 고생물학자·해양생태학자· 지질학자 등 과학자들과의 인터뷰는 물론 한국의 비무장지대를 비롯해 터기와 북키프로스의 유적지, 아프리카와 아마존, 북극 등을 답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 이후의 세상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미래학 책으로도, 환경관련서로도 읽히는 책은 과학적 논거를 쉽고도 정확하게 소화해냈다는 점에서 과학논픽션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어린이·청소년=어린이책 전문편집자들은 『만국기 소년』(유은실 지음, 정성화 그림, 창비)을 으뜸으로 꼽았다. 비현실적일 만큼 허황되지 않으면서도 절망을 이겨낼 힘을 주는 어린이책이란 점이 평가 받은 듯하다. 어른들이 만든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린 창작 단편동화집이다. 여섯 식구가 조그만 컨테이너 박스에서 사는 친구 진수네 가족을 학교와 동네에서 지켜보게 된 소년의 시선으로 전하는 표제작인 ‘만국기 소년’ 등 부끄럽고, 슬프고, 화나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절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따뜻한 시선이나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비추어 보면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작가란 생각도 아울러 든다.

김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