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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교향곡 '운명' 마치자 수갑 찬 연주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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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의 빌 콘서트 홀(Beall Concert Hall). 베토벤 교향곡 제5번‘운명’연주를 막 끝낸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백스테이지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에 체포됐다. 이달 20일 기소장이 공개되면서 뒤늦게 이같은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해 28세의 캐나다 오타와 태생의 중국계 조셉 호카이 탕. 현재 오리건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탕은 오리건대 음대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를 끝낸 후 악기는 동료 단원들에게 맡긴 다음 경찰이 내미는 수갑을 차고 경찰차를 타고 공연장을 떠났다.

악기 판매 관련 사기 혐의로 체포된 탕은 2002년 4월부터 인터넷 쇼핑몰 등에 바이올린ㆍ비올라 판매 대행업소를 차려놓고 사기 행각을 벌이다 고객들의 항의와 환불 요구가 빗발치자 지난해 12월 종적을 감췄다.

연방 경찰이 파악한 탕의 범죄는 전자 통신 수단에 의한 사기 2건, 우편에 의한 사기 8건 등 모두 10건. 최고 징역 20년까지 구형 가능하다. 탕은 샌프란시스코ㆍ샌 호제이ㆍ오클랜드 등지의 악기 수집가들로부터 판매를 위탁받아 악기를 판 다음 악기값을 지불하지도 않았고, 악기 수리비로 부도 수표를 발행했다. 또 악기 딜러에게 악기를 배송받고도 못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고객에게 팔기로 약속한 악기를 다른 악기와 바꿔치기 해서 판 혐의를 받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백만장자가 된 봅(가명)은 악기상으로부터 고가(高價)의 바이올린을 수집해왔다. 그는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알게 된 탕을 만나 금새 친해졌다. 탕은 뛰어난 바이올린은 물론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으로 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봅은 탕을 믿고 자신이 소장해오던 바이올린과 활의 판매 대행을 맡겼다. 하지만 탕은 악기를 팔아주기로 약속해 놓고 2006년말 한푼도 주지 않고 종적을 감췄다. 봅이 탕에게 맡긴 악기는 시가로 150만 달러(약 14억원). 한편 샌프란시스코의 악기상 롤란드 펠러는 1999년 탕에게 바이올린을 수리해주고 받은 1500달러(약 140만원) 부도 수표를 받았다.

피해자들의 잇따른 신고를 접수한 연방 경찰은 미 체신청 수사국에 요청해 탕의 주소지를 추적했다. 수사당국은 탕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고향 오타와를 샅샅이 뒤졌다. 올 1월에는 일간지‘오타와 시티즌’홈페이지에서 탕이 캐나다 음악 콩쿠르에서 캐나다 대사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이 발견됐다. 체신청이 어렵사리 알아낸 탕의 주소지는 오리건 주 유진 빌 콘서트홀. 오리건대 음악무용대학의 주무대다.

경찰은 대학 오케스트라가 11월 28일 이곳에서 연주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무대 뒤에서 기다렸다. 경찰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주회를 망치고 싶지 않아 끝날 때까지 기다렸어요. 정말 훌륭한 음악회였습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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