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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스러진 해외 ‘별’ 그들 이름, 세계사에 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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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구촌을 주름잡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많은 인물들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2007년 사라졌다. 영욕의 일생을 보낸 뒤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고 떠난 세계적인 인사들의 면면을 정리해본다.(괄호 안은 향년과 사망일)

1991년 8월 공산당의 군사쿠데타에 맞서 ‘탱크 위의 격정적 연설’로 옛 소련을 붕괴시켰던 보리스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76·4월 23일)이 타계했다.

그는 소련 해체와 러시아 공화국 탄생, 자본주의 이행이라는 격동기 러시아 역사를 이끈 주인공이지만 부패와 정경유착, 국정 혼란 등으로 비판을 받았고 심장병과 과음에 따른 건강악화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99년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권좌를 물려줬다.

72년부터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을 맡았던 쿠르트 발트하임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88·6월 15일)과 한국을 방문해 위안부 문제를 사죄했던 미야자와 기이치(宮宅喜一)전 일본 총리(87·6월 28일)도 생을 마감했다.

중국에서는 정계 거두들이 잇따라 세상을 떴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절친한 친구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8대 원로’의 마지막 생존자인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98·1월 15일)와 ‘상하이방’의 거두인 황쥐(黃菊) 부총리(69·6월 2일)가 그들이다.

문화예술계는 많은 거장들을 잃었다. ‘천상의 목소리’로 세인을 사로잡았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71·9월 6일). 클래식 부문에서 앨범 판매 세계 기록을 갖고 있는 그가 타계한 뒤 발매된 추모 앨범은 또다시 유럽 클래식 차트 1위에 올랐다. 러시아가 낳은 세기의 첼리스트이자 장한나의 스승이었던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80·4월 27일)도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생일상을 받은 지 한달 만에 눈을 감았다.

신과 구원, 죽음과 실존 등 형이상학적 주제를 평생 파고든 ‘영상철학자’ 잉마르 베리만 감독(89·7월 30일)은 아카데미,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주요 영화제를 모조리 휩쓴 현대 예술영화 최고봉이었다. ‘정사’ ‘태양은 외로워’ 등 모더니즘 영화의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94·7월 30일)도 유명을 달리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왕과 나’의 여배우 데보라 커(86·10월 16일)도 저 세상 사람이 됐다.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그가 버트 랭카스터와 보여준 격정적인 바닷가 러브신은 아직도 우리 뇌리에 생생하다.

‘제왕적 대통령제’란 용어를 만들어낸 미국의 대표적 자유주의 역사가인 아서 슐레진저 2세(89·2월 28일)와 현대인은 ‘복제의 시대’에 살고 있다며 ‘시뮐라시옹 이론’을 주창한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77·3월 6일)는 학계가 잃은 인물이었다.

일본 기업소설 『불모지대』의 실제 모델이자 ‘종합상사 신화’의 주인공이었던 세지마 류조(瀨島龍三) 전 이토추종합상사 회장(95·9월 4일)은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40여년간 양국 관계의 막후 ‘징검다리’역을 했던 인물이었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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