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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人治아닌 法治로 새해 맞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94년 한국의 정치는 현실이 이상(理想)을 가로 막은 해였다. 이상이 현실을 제압했던 93년 문민정부 출범 당시와는 대조적이었다.
지난해 국민들은 새 정부의 과감한 개혁정책과 과거청산에 모두박수를 보냈다.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금년들면서 이상한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잘한다』고 박수를 보냈던 국민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을 할만 하면 사건이 터졌다.다리가 무너지고,세도(稅盜)가들끓고,가스가 폭발하는등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앞으로 나아가기는 고사하고 사건.사고의 뒤치다꺼리하는데만도 역부족이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개혁의지가 바뀐 것도 아니었다.
金대통령 스스로는 계속 자신에게 엄격해 모범을 보이려 했다.
정치자금을 받지 않고,청와대 안가를 없애고,고통스럽지만 매일 칼국수로 점심을 때우며 검소한 생활에 앞장섰다.
새 정부가 주창하던 신한국의 문턱에 접근하는 기미라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이러한 좌절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실 사건.사고가 날 때마다 이 정부는 그 탓을 과거 정권에돌렸다. 金대통령은 이러한 심정을 『부실기업을 인수받은 것 같이 조마조마하다』는 말로 표현했다.세금 도둑만 해도 조선조(朝鮮朝)탐관오리로부터 근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을 따지자면 그럴수 있다.고속성장의 후유증이 이제야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그렇다고 선택적으로 정권인수도 할수 없는노릇이다.좋은것만 물려받고 나쁜 것은 떠넘길 수도 없기 때문이다. 구조화된 비리,쌓인 적폐,기득권 세력의 막강함,과거로 회귀코자하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등 지난해 개혁의 서슬에 눌려 있었던 현실적 요소들이 머리를 쳐든 점도 없지 않다.
정치권을 보더라도 금년은 구태가 계속된 한해였다.
지도자의 선한 의지만으로는 현실의 벽을 뚫고 나가기에 역부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점에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아래 관리능력을 높였어야 했다. 또 현실의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한 국민적 역량을 결집한다는 점에서 여러 방면의 지혜를 모으는데 힘을 기울였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이번 연말 개각은 이런 점을 보완키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자 개인이 아무리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써도 제도로서 뒷받침되지 않으면 1회성의 지시에 불과하다.
국면 전환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문제가 생길 때마다 또다른충격요법으로 관심을 바꿔 놓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수 없다.충격은 더 강한 충격을,강한 말은 더 강한 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法治)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정치권만 본다면 올해 돈안드는 선거법등 부족하나마 일단 제도정비에는 발동을 걸었다.그러나 본질은 변화할 기미가 없다.
새해에는 이 제도라는 그릇에 좋은 내용들이 가득 채워지기를 기대한다.
특히 조급히 이루려 하지말자.벽돌을 쌓듯 기다릴줄도 알아야 한다.이상이 단숨에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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