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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젊은이여, 교양을 닦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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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을 만나다보면 이런 푸념을 자주 듣게 된다. "신입사원일수록 영어나 상식이 뛰어나 입사성적은 거의 만점에 가깝지만, 현업 부서에 배치하고 나면 일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그 때문에 부서장들에게서 항의를 많이 받는다." 얘기인 즉, 한가지 일을 하더라도 전후좌우로 연계된 다른 일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청년실업이 심한 요즘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입사 시험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많다. 대학 4년 내내 입사시험 준비만 해 입사성적은 좋지만, 정작 입사 후 해야 하는 '진짜' 일을 위한 준비는 거의 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다.

나 역시 대학 강단에서 같은 답답함을 느껴 오던 차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뇌를 단련하다'를 접하면서 그 모든 것들의 원인이, 교양적 기반 없이 너무 일찍 전공 지식에 빠져들게 하는 우리 교육풍토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교양이나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고 기초과학이 등한시되는 사회풍조로 심각한 고민에 휩싸여 있다. '교양'과목은 줄줄이 폐강되고 자기분야만 아는 '전문바보'들을 양산하는 이웃나라의 교육문제.대학문제가 어쩌면 우리와 이리도 흡사한지 동병상련을 느끼는 대목이다.

다치바나가 볼 때, 우리 '인간의 현재' 모습은 데카르트 이래 시작된 요소환원주의에 의해 쪼개질 대로 잘게 쪼개진 파편의 극단에 서있는 아주 위험한 형국이다. 인류의 전통을 통해 축적된 어마어마한 교양의 세계, 지(知)의 바다를 벗어난 채 그 한 귀퉁이에 몰린 일그러진 우리의 모습. '문과.이과로, 전공으로' 그것을 가중하는 교육풍토. 진정한 학문을 연구한다는 대학에서조차 미세한 것, 보다 정밀한 것을 연구할수록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받고, 거시적으로 전체를 바라보는 연구를 하면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풍조. 문과계 지식인이 자연과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과계 지식인이 인문사회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악순환 등.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우리의 젊은이들을 방황하게 하고 있다.

가장 유연한 뇌를 가진 20대 젊은이들이 드넓은 교양의 세계(지의 전체상)에서 자유로운 발상과 상상을 하며 뇌를 단련하지 못한 채, 좁디좁은 특정 지식에 몰입해 사고가 굳어지는 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다치바나가 제시하는 뇌의 단련은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 뇌가 가장 유연한 스무살 즈음의 실천에 좌우된다. 그는 취업걱정 대신 오히려 교양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며, 좀더 넓은 안목을 기르기 위해 유급도 두려워 말라고 권고한다. 스무 살 즈음의 뇌파는 성인의 뇌파처럼 굳어 있지 않고 어떠한 편견.권위에도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이 시기에 뇌를 균형 잡힌 뇌로 키워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치바나의 '뇌를 단련하다'는 그가 도쿄대에서 '인간의 현재'라는 제목으로 열강한 내용을 담은 강의록이다. 책을 읽다 보면 발견하는 놀라운 사실은, 이 책 자체가 뇌를 단련하기 위해 읽어야 할 첫번째 훈련서라는 점이다. 마음 편하게 책을 읽다보면 '그냥' 뇌가 단련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후배들에게 소위 '교양 커리큘럼'을 돌렸던 필자의 대학시절을 회고할 때, 이 책 속에는 바로 그 '커리큘럼'이 너무나 흥미진진한 사례와 함께 순서대로 제시돼 있다. 혹시 대학신입생이나 사회초년생을 오리엔테이션 하고자 고민하는 선배.선생님. 부모님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해드린다. 이번에 나온 1권을 읽은 필자는 벌써 2권이 기다려진다.

신범석 입소(立素) HRD컨설팅 대표.고려대 겸임교수

*** 다치바나 다카시

다치바나 다카시(64.사진)는 '지(知)의 거인'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대표적 지성이다. 특유의 속독법과 엄청난 독서량을 가진, 책에 관한 달인으로도 통한다. 도쿄대 불문과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대 문예춘추사에서 다나카 가쿠에이 전 일본 총리의 비리를 파헤치는 기사를 연재,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해 '도쿄대 학생은 바보가 됐는가'라는 책을 내 일본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뇌사''원숭이학의 현재''임사체험''우주로부터의 귀환''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등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북마크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둘 사이를 파괴하고 싶지 않으면, 그리고 오래 지속시키고 싶으면, 어느 정도의 예의는 필요한 법이다.'18세기 영국 외교관 필립 체스터필드가 아들에게 전한 말로, '고도원의 아침 편지'(청아출판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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