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생각은…

청소년을 ‘게임 수렁’서 건져내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한국의 아이들에게는 사색할 시간을 주지 말라.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게임에 몰입하도록 해 감성과 상상력이 말살되도록 하는 것이다.”

너무 끔찍한 말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과 게임산업의 눈부신 발전으로 우리 아이들은 집과 PC방에서는 물론 걸어가면서도 게임을 하고, 영화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그러면 언제 사색에 빠지고 상상할 시간을 갖는단 말인가. 나머지 시간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에 지쳐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많은 청소년이 이런 문제로 정신적·육체적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나친 인터넷 사용과 게임으로 학업에 지장을 받는 것은 물론 가족 간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많다. 집에서 몇 시간씩 게임하는 것부터 시작해 학원을 빠지고 PC방으로 간다. 심지어 부모님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학교까지 빼먹고는 PC방으로 가거나 돈 없이 PC방에 들어가 몇 시간씩 게임한 뒤 도망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선 우리나라의 인터넷과 게임산업 발전, 맞벌이 부모의 증가,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과 청소년 놀이 환경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우리 아이들은 점점 더 인터넷과 게임 세상에 녹아 들고 있는 현실이 돼 버렸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 청소년(9~19세) 가운데 무려 14%가 인터넷과 게임 중독 위험 상태에 있었다. 이 중 70%는 건강 악화, 학습 장애 및 가족 갈등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올해는 이보다 훨씬 증가했을 것이다.

이런데도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에서도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번은 PC방을 돌아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PC방은 지하에 있다. 거기에다 자욱한 담배 연기, 침침한 실내 분위기, 연령과 시간에 상관없이 게임을 하는 환경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동요동 봉사단, 모 중학교 봉사단과 공동으로 ‘건강한 PC방 환경을 위한 연대 서명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다.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통해 게임산업은 육성하면서 게임으로 인한 폐단을 줄이는 노력은 얼마나 하는지 말이다. 게임산업을 지원해 외화 몇 억 달러를 벌고 있는 사이 우리 청소년은 한창 감수성과 상상력이 자라는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아이들이 건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과 문화를 시급히 조성해야 한다. 게임업체들의 도덕성과 사회적 의무 준수, PC방을 허가제로 전환해 금연 구역으로 규정, 학업 시간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2시간 이상 사용 금지 등의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중국도 인터넷 게임 피로도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데 인터넷이 앞선 우리나라는 부작용을 막는 데 있어선 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정부, 학교, 관련 기업체 등이 진심으로 국민과 함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머리를 맞대고 풀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나의 아이와 우리 아이들을 지키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이 아닐까.

김종삼 강남구청 법제 담당, 동요동봉사단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