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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체첸공격에 그로즈니市民 10만명 비폭력시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인간 띠」가 러시아에 다시 등장했다.
지난 89년8월 옛 소련방의 발트 3국에서 독립의지를 내외에과시하기 위해 2백만명의 발트 3국 국민들이 6백㎞의 국경을 「인간의 띠」로 연결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던 인간 띠가 이번에는 카프카스(코카서스)에 등장했다.
20일 눈보라가 치는 체첸공화국.10만여명의 체첸시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길거리로 나섰다.
10일째 계속된 러시아군의 공격과 국경봉쇄에 맞서 시민들이 무저항 비폭력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이날 인간 띠는 눈이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로즈니동쪽으로 20㎞ 지점인 아르군에서부터 동서쪽의 인근 두 공화국인 다게스탄과 잉구셰티아를 잇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게스탄과 잉구셰티아는 체첸과 같은 회교국가이고 특히 잉구셰티아는 민족적으로도 체첸과 동일한 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날의 인간 띠는 비록 무력으로는 체첸과 연합해 러시아와 싸우지 못하지만 심정적으로는 러시아에 항의하는 다게스탄과잉구셰티아의 정서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로즈니 전체시민은 약40만명.이중 러시아인이 약5만명인데다 이번 사태로 시민중 10만여명이 이곳을 탈출했다는 것을감안하면 이날 인간 띠를 만들기 위해 참여한 10여만명은 사실상 그로즈니 시민 전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일부는 「 赤.綠.
白」 3색의 체첸기를 들고 인간 띠를 만들었고 일부는 「우리는평화를 원한다」는 등의 글귀가 새겨진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에 참가했다.옛소련에서 인간 띠가 등장한 것은 이번으로 모두 3번째. 89년8월 발트의 인간 띠는 독립의지의 과시와 세계의 이목집중으로 목적을 달성했으나 같은 해 9월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발생했던 아제르바이잔인의 인간 띠는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었다. 특별한 물리력을 갖지 못한 소수민족들이 자신들의 의지를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개발해 낸 인간 띠가 이번 체첸사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金錫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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