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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올해의 톱 CEO 남용 LG전자 부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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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국내 증시에서 최고경영자(CEO)의 능력은 주가에 과연 어느 정도 먹혀들까. 국내 증시를 쥐락펴락하는 베스트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은 10명 중 9명이 ‘CEO가 누구냐에 따라 주가가 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올 한 해 국내 증시의 최고 CEO는 과연 누구일까.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영예의 1위를 차지했고, 이구택 POSCO 회장과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강덕수 STX 회장 등이 뒤를 이었다. 모두 뚜렷한 비전과 추진력으로 해당 기업의 실적과 가치를 쑥쑥 키운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는 중앙SUNDAY가 최근 국내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 42명과 증권사의 리서치헤드·애널리스트 24명 등 모두 66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베스트 CEO를 묻는 설문을 실시한 결과다.<표 참조>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에게 베스트 CEO를 물은 것은 이들만큼 CEO를 종합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전문가를 찾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펀드매니저 42명 중 39명은 “CEO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기업의 주식을 사지 않는다”고 답했다. CEO에 따라 주가가 움직이는 이른바 ‘CEO 주가’가 존재한다고 믿는 응답자가 전체 66명 중 61명에 달했다.
 
CEO 덕목, 비전과 변화 대응이 으뜸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은 CEO를 평가할 때 비전(통찰력)과 변화 대응 능력, 그리고 수익 창출 능력 등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았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최고 CEO로 평가받은 것도 이런 능력을 갖춘 덕분이다. 그는 올해의 베스트 CEO를 묻는 질문(복수 응답)에서 55표를 얻어 압도적인 1위로 차지했다. 응답자들은 “남 부회장이 뛰어난 조직 개혁과 명확한 비전 제시, 비용 절감 등을 통해 LG전자의 실적을 대폭 개선했다”고 평가했다. 올해 그의 취임과 함께 LG전자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한 것도 큰 힘이 됐다. 이 회사의 주가는 올 들어 21일 현재까지 87%나 뛰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31% 오르는 데 그쳤다.

남 부회장이 올해 초 LG전자의 CEO 자리에 오를 때만 해도 증권시장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올 1월 9일 발표된 대우증권의 LG전자 기업분석 보고서는 증권가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지난해 매 분기 나온 LG전자의 실적 발표는 항상 시장 기대치에 못 미쳤다. 2007년 전망치를 대비해 봐도 이 회사 주가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다만 최근 경영진이 바뀐 게 호재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보고서 맨 밑에 사족처럼 단 이 대목이 적중했다.

올해 남 부회장의 승부처는 휴대전화 사업부문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LG전자의 휴대전화 싸이언은 삼성전자 애니콜 앞에서 잔뜩 주눅 들어 있었다. 다만 초콜릿폰이 유일하게 선전하고 있었다. 남 부회장은 싸이언의 체질을 확 바꿨다. 그의 취임 이후 LG전자는 샤인폰·뷰티폰 등 트렌드를 주도하는 신제품을 연이어 내놓았다. 지난 10월 유럽시장에 첫선을 보인 뷰티폰은 출시 5주 만에 31만 대의 판매액을 기록했다. 역대 LG 휴대전화기 중 최대 판매 기록(1500만 대)을 수립한 초콜릿폰은 같은 기간 30만 대 팔렸다. 뷰티폰의 기세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LG전자의 실적은 크게 좋아졌다. 1~3분기 LG전자의 누적 영업이익(해외 법인 포함)은 852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869억원)보다 24% 늘었다. 특히 휴대전화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1~3분기 406억원 적자에서 올해 3분기까지 6324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그러나 남 부회장이 안고 있는 숙제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올해 실적 개선의 최대 공로자인 휴대전화의 원가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우리투자증권 이승혁 애널리스트는 “LG전자는 노키아는 물론 삼성전자에 비해 해외 현지 생산과 부품 조달 비중이 낮다”며 “급성장하는 인도와 중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수익성을 개선하려면 해외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워런 버핏이 선택한 이구택 회장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의 투자 기준에서도 CEO의 비중은 무척 높다. 그는 회사를 인수할 때 반드시 그 기업의 CEO가 인수 후에도 같이 갈 만한 인물인지를 꼼꼼히 따져본다. 그가 제시한 6개 항에 걸친 기업 인수 기준의 한 항목은 이렇다. ‘경영진이 그대로 있을 것. 우리는 경영진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런 버핏이 POSCO 지분 4%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을 찾은 버핏은 “POSCO의 현 경영진이 매우 유능하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주식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그 덕에 POSCO 주가가 급등한 것은 물론이다.

이번 설문에 응한 증권 전문가들도 이구택 POSCO 회장을 높이 평가했다. 이 회장을 올해의 베스트 CEO로 꼽은 전문가가 41명에 달했다. 특히 의욕적인 해외 진출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사실 그동안 POSCO는 국내 시장의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인도의 중소 철강회사에 지나지 않았던 미탈은 거듭된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세계 최대 철강회사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설문 응답자들은 “POSCO가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를 베스트 CEO로 뽑은 전문가의 절반가량이 이 회사의 약점으로 꼽혀왔던 사업 글로벌화 문제를 이 회장이 해소하고 있다고 답했다. POSCO는 내년부터 2020년까지 인도 동부 오리사주에 120억 달러를 투입해 연산 1200만t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지을 계획이다. 올 들어 해외 광산 3곳의 지분을 인수했거나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기업가치(주식 시가총액)가 그의 회장 취임 이후 4년9개월간 5배 이상 늘어난 점도 증권 전문가들의 마음을 샀다. 이들은 세계적인 철강 수요 증가 덕분에 POSCO 주가가 그냥 올라간 것으로 보지 않았다. 한 펀드매니저는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온 리더십 덕분에 POSCO의 기업 가치가 급성장했다”고 평가했다.
 
비전 가진 창업 CEO들

3위와 4위에 오른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강덕수 STX 회장은 남다른 비전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박 회장은 1998년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를 내놓았고, 해외 펀드 시장을 개척하는 통찰력을 보여줬다. 그가 남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면의 진실을 파악하는 능력 덕분이다. 미래에셋의 광고 카피는 ‘보이는 것만 믿으세요’지만 실제 박 회장은 보이지 않는 이면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찾는 데 힘을 쏟는다. 현상만 파악해서는 앞서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펀드 투자자들의 신뢰는 굳건하다. 내놓는 펀드마다 자금이 쏠려 금융감독 당국을 불안하게 만들 정도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리서치 헤드들은 금융산업 예측 능력과 과감한 결단 등을 높이 평가했다. 이들은 “미래에셋증권이 삼성증권을 제치고 증권업 시가총액 1위로 오른 것은 ‘박현주 효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사재 20억원과 스톡옵션, 종업원 지분 등을 동원해 쌍용중공업을 인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STX그룹을 일군 강덕수 회장은 기업 인수합병(M&A)의 귀재로 통한다. 그가 될성부른 기업들만 싼값에 척척 사들일 수 있었던 것은 사업의 비전을 보는 안목과 기업 가치를 높이는 구조 개선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손대는 회사마다 인수 후 가치와 실적이 뛰고 있어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데 손색이 없다. 업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강 회장을 베스트 CEO로 선택한 펀드매니저 18명 중 8명은 ‘통찰력’을 선택 이유로 꼽았다.
 
파이 키우는 CEO 환영

설문에서 공동 5위를 차지한 KT 남중수 사장은 조직의 성장동력을 튼실히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유선통신 시장에서 KT는 요즘 성장의 돌파구를 모색 중이다. 자회사인 KTF와의 합병이 가장 중요한 카드로 거론되고 있다. 남 사장은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 추진으로 유선통신 시장과 무선통신 시장의 칸막이가 조만간 사라질 것으로 보고 KTF 합병카드를 들고 나왔다. 아울러 IPTV 등 신성장동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갔다. 주식시장은 뒤늦게 그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2개월간 코스피지수가 7% 빠지는 와중에 KT 주가는 21% 올랐다.

LG필립스LCD(LPL) 권영수 사장도 역전 홈런을 날린 덕분에 5위에 포진했다. 올해 초 권 사장이 취임할 무렵 LPL은 암울했다. 지난해 2분기부터 올 1분기까지 4분기 연속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권 사장은 기존 설비를 최대한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전략을 채택했다. 하이닉스 회생 전략과 같은 것이다. 권 사장은 지난 3월 맥스 카파(Max Capa)라는 조직을 만들고 생산 프로세스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이 덕에 LPL은 올해 설비 투자가 거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3분기까지 생산 능력이 30% 이상 성장했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내부 프로세스 개선을 통해 이익의 질을 개선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7위에 오른 차석용 LG생활건강 사장은 사업 구조 개편과 신상품 개발 능력 등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는 외국 제품이 지배해온 국내 고가 화장품 시장을 명품형 신제품으로 공략, 매출과 수익성을 크게 높였다. 8위를 차지한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은 해외시장 개척 능력을 인정받았다. 설문에 참가한 한 리서치헤드는 “NHN의 일본과 중국 시장 진출은 성공적”이라며 “해외 시장 진출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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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참여 회사 <펀드매니저> 미래에셋·삼성·한국·하나UBS·마이다스·푸르덴셜·KTB·칸서스·신영·SH자산운용 <리서치헤드·투자전략부장·기업분석부장> 삼성·미래에셋·한국·우리·대신·대우·동양·푸르덴셜·하나대투·굿모닝신한증권

이희성기자·이경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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