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핵심 브레인에게 듣다 ‘실용정부’의 외교 안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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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08면

현인택 [최정동 기자]

-최대 현안인 북핵 정세에 대한 평가부터 듣고 싶다.

“세계적 차원서 협력하는 韓·美동맹 만들 것”

“현실이 중요하다. 지금 북한도 6자회담을 통해 핵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표명한다. 2·13 합의를 통해 6자회담 테이블에서 핵을 논의하기로 했고 10·3 합의로 북핵 불능화 단계에 이르렀다. 이것은 팩트(사실)다. 가정이 아니다. 이 당선자도 6자회담의 진전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시점을) 뒤로 돌려 가정하는 얘기는 큰 의미가 없다. 북핵이 진전된 환경을 이해하고 그걸 바탕으로 정책을 해나가는 것이다.”

-당선자의 대북정책 구상인 ‘비핵·개방 3000(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10년 후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가 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언제 가동되나.

“9월 중앙일보 J-글로벌 포럼에서 이 당선자가 ‘신한반도 구상’을 발표했듯이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기 전이라도 불능화 기간을 거치는 동안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비핵·개방 3000’은 경제·교육·재정·인프라·복지 다섯 분야의 플랜을 담고 있다. 북한이 올해 말까지 핵 불능화 이행을 분명히 하면 그들 역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를 해달라고 할 것이다. 비록 핵이 완전히 폐기가 안 된 상태라 해도 북한의 ‘30만 산업인력 양성’ 같은 협력은 시작할 수 있다. 경제·금융·기술 분야의 산업 인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

-구체적인 시기를 상정하고 있는가.

“북한이 핵 불능화를 잘 끝내면 시기적으로 새 정부가 출범하는 때와 거의 일치할 것이다. 남북이 서로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실무급 협의체를 구상하고 있다. 대북 지원을 일방적으로 진행해서는 안 되며 북한이 따라와줘야 한다.”

-이 구상은 북한이 받아들여야 성사된다.

“지금 우리가 준비한 것은 대단히 건설적이고 구체적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이처럼 철저한 통합 플랜을 만든 적이 없었다.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도 단편적이거나 일과성 사업으로 끝날 가능성이 큰 내용이었다. 우리의 플랜이 좋고, 의지가 있는데 북한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소요 재원은.

“남한과 더불어 국제사회가 함께 나서 북한의 새 경제개발 계획을 시행하게 될 것이다.”

-이 구상이 진행되는 도중에 북한이 핵 문제를 악화시킨다면.

“북한이 핵 폐기 정책을 포기하는 행동을 한다면 엄격하게 대처해야 한다. 근간은 국제사회와의 공조다. 먼저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 면밀히 판단하고 6자회담 틀에서 참가국들과 함께 압박하는 게 필요하다. 북핵은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 어느 나라도 용인하지 않는다. 유럽연합(EU) 역시 마찬가지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대북 경수로 지원을 위해 설립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EU도 참가했듯이 국제사회 모두가 관심을 갖고 있다.”

-북핵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말로는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어떠했나. 지난 10년간 북한과 다양한 경협을 해왔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은 핵무장 국가 단계에 온 것 아닌가. ‘햇볕정책’은 비핵화를 위해 하는 것이다. 경협의 목적은 햇볕정책이 아니라 ‘비핵화’가 돼야 하는데 이 부분이 혼동됐다. 진보 정권은 2∼3년 전만 해도 북핵을 부정했다. 정보 쪽에서 핵 위험을 증언해도 좌파의 입에선 핵을 안 가졌다는 말이 나왔다. 2002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제기됐는데도 (현 정부는) 오히려 덮기에 급급했다.”

-국제 공조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보나.

“한·미·일 3국 공조라는 말이 사라진 지 오래다. 미국은 우리와 공조가 안 되니까 2005년 중국과 전략 대화를 시작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6자회담 전까지 미·중·북 3자가 한국을 빼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핵을 ‘미국과 북한이 해결할 문제’라는 말도 했다. 이런 모습이 재연돼선 곤란하다. 결국 북핵은 국제사회가 합치된 의견으로 압력을 가할 때 해결될 수 있다.”

-개성공단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 상태론 성공할 수 없다. 전략 물자 반입이 제한되면서 컴퓨터도 못 들어간다. 어떻게 성공하겠는가. 기업을 잘 아는 이 당선자는 시장경제가 작동하고 이윤을 창출할 자신이 있어야 기업이 돈을 투자한다고 믿는다. 우리뿐 아니라 세계적 기업들이 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하는데 지금 상태론 개성공단을 확대해도 정부 부담만 커진다. 기업이 이윤을 못 내니 국민 세금만 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이 당선자의 (한강 하구에 남북 경제협력지구를 조성하는) ‘나들섬’ 구상이 훨씬 창의적이다.”

-한·미 관계에 관한 구상도 궁금하다.

“지난 5년간 동맹 관계에 금이 가서 문제다.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에 파병했는데도 양국 정부 간에는 큰 신뢰가 없다. 이 당선자는 현 외교안보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노력을 많이 쏟을 것이다. ‘창조적 재건’ 구상을 하고 있다.”

-내용이 뭔가.

“21세기 한·미동맹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 비전은 첫째 ‘신뢰 동맹’이다. 둘째,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증진시키는 ‘가치 동맹’이다. 셋째,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협력하는 ‘평화구축 동맹’이다. ”

-2012년 4월로 돼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한국군 전환 문제는 예정대로 진행되나.

“핵 문제가 해결된다면 2012년에 반환돼도 문제가 없지만 한반도 안보 상황에 따라 시기는 재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일본·중국과의 관계는.

“주변 국가로서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분야에서 협력해야 한다. 한·미동맹 강화가 한·일, 한·중관계 증진과 상치되지 않는다. 지금 중국 스스로 미·중관계를 빠르게 가져가는 측면이 있다. 일본과 중국 사이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들의 관계를 설정하고 우리를 거기에 맞추는 것은 수동적인 과거형 외교다. 우리의 ‘실용주의’ 비전과 원칙에 맞춰 관계를 설정해 가면 된다.”

-우리의 경제 규모에 걸맞은 국격 외교가 절실한 시점이다. 정부개발원조(ODA) 확대 등은 불가결하다고 보는데.

“그렇다. 당장 ODA가 부담이 되는 측면이 있지만 수십, 수백 배로 돌아온다. 한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신흥공업국 인상이 남아 있다. 삼성·LG가 휴대전화를 한 대 팔아도, 현대가 자동차를 한 대 팔아도 한국이 선진국이 되면 (그 제품의 위상이) 달라진다. 왜 일본의 도요타가 있나. 우리도 정보기술(IT)은 세계 최고 아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우리는 (위상을) 거꾸로 세는 게 빠르다. 11∼12위의 경제 규모에 걸맞은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기여가 필요하다.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대해서도 우리 국가 위상에 맞는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인택 교수는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1990년 미국 UCLA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ㆍ통일부ㆍ국방부를 비롯한 외교·안보 부처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합참ㆍ공군의 정책자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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