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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지구촌 스타 작가 21명의 ‘문학 잔칫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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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나딘 고디머 엮음, 이소영 외 옮김
민음사, 408쪽, 1만2000원

기획의도에 무릎을 치고, 수록 작가들의 이름값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세계문학 단편선이다.

21명의 작가들이 이름을 올렸는데 나딘 고디머, 가브리엘 마르케스, 주제 사마라구, 귄터 그라스, 오에 겐자부로 등 노벨 문학상 수상자만 다섯 명이다. 여기에 아서 밀러, 우디 앨런, 존 업다이크, 미셸 투르니에, 수잔 손탁 등 낯익은 이름들이 함께 했으니 현대 단편문학의 정수를 한 권으로 맛볼 수 있겠다.

기획의도는 더욱 눈부시다. 1991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남아공 출신의 나딘 고디머는 어느 날 유명 가수들이 모여 자선공연을 하듯 작가들도 세상을 위해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작가들의 글을 모아 출판하고, 그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면 좋겠다는 데 착안한 고디머는 자신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작가 20명에게 편지를 보내 취지를 설명하고 대표작을 하나씩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고디머의 편지를 받은 작가들은 놀랍게도 원고료나 저작권료 없이 작품을 보내주었고 각국의 출판사들도 그 취지에 공감해 이익없이 출판하는 데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2004년 선보인 것이 이 책의 영문판 ‘Telling Tales’였다.

오대주에 걸친 작가들이니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악마의 시’를 써 이슬람 권의 표적이 됐던 살만 루슈디는 사랑을 믿고 인도 남자를 따라간 미국인 여자 이야기를 통해 동서양의 문화적 대립과 성차별 문제를 다룬 ‘불새’를 기증했다. 귄터 그라스는 세계대전의 참상을 전하는 ‘증인들’을 선사했다. 이를 위해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작가 레마르크와 ‘강철폭풍’의 윙거를 불러냈다.

반갑고 귀한 작가도 만날 수 있다. 올 노벨 문학상 1순위 후보였던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와 최근 영미 단편문학의 총아로 떠오른 폴 서룩스 등 우리 독자에게 처음 번역, 소개되는 작가들이 바로 그렇다. 마그리스는 자살한 기타리스트를 추모하며 지금은 퇴색한 중부 유럽의 과거까지 반추하는 ‘과거의 영광’을, 서룩는 불임의 부부가 암거래로 아이를 사려고 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린 ‘강아지의 온기’를 들려준다.

고디머는 작품을 요청할 때 두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고 한다. 에이즈와 관련이 없을 것, 자신의 문학세계를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일 것이었다. 그 덕에 책은 문자 그대로 문학적 잔칫상이 되었다.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자천(自薦)한 대표작이니 말할 것도 없다. 작가 신경숙이 “스물 한 개의 탁월하고 독창적인 이야기들이 각각 제 스타일을 내세우며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들이 기부한 언어를 섭렵하는 일은 대륙과 대륙 사이를 오가는 일이며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문화 사이를 유영(遊泳)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추천한 것에 공감이 간다.

참고로 덧붙이면 첫 영문판의 수익금은 남아공 에이즈 구호단체에 기부됐고 한국어판 수익금 역시 고디머의 뜻에 따라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 기부된다는 뜻 깊은 책이기도 하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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