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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작가 황재형씨 16년 만에 개인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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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화가 황재형(55·사진)이 화단의 주목을 받은 것은 중앙대 회화과 졸업반 시절인 1982년 제5회 중앙미술대전이다. 광부의 작업복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황지 330’이란 작품으로 장려상을 받았다. 소재가 특이할 뿐 아니라 보는 이를 압도하는 강렬한 그림이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는 광부용 대형 도시락통에 석탄을 담은 설치 작품을 내놓았다. 광부의 삶에 대한 진한 사실주의적 접근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쥘 흙과 뉠 땅’전은 작가가 도달한 치열한 현장 리얼리즘의 경지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전시에는 태백의 장엄한 경관을 담은 8m 길이의 대형 풍경화를 비롯해 60여 점의 회화작품이 나왔다. 그의 그림은 불편하다. 풍경은 황량하고, 인물들은 누추한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것도 보인다. 거친 풍경에는 힘이 있다. 자연의 정기라고 할까, 봄을 예비하는 웅크린 모습이라고 할까. 누추한 인물들은 ‘살아있기에 희망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때로는 말없이 교감하는 따스한 정서가 힘든 삶 속에 깔려 있기도 하다. 어두운 현실과 그 속에 자리잡은 희망의 끈끈함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자리잡고 있다.

그 배경에는 민중미술 작가로서의 황재형의 삶이 있다. 그는 70년대말 강원도 삼척의 탄광촌을 견학한 이후 탄부들의 삶의 무게가 서린 탄광촌을 그리겠다고 결심한다. 83년 가족을 이끌고 태백의 황지로 이주한 그는 25년째 현지에 살면서 작업을 계속해왔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과거에 다짐한 바 있다. 불편한 잠자리를 자는 사람들에게는 안락과 휴식을 주는 그림을, 편안하고 답답한 일상에 젖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함과 경각심을 느끼게 하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그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나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림에서 진정성이 제대로 구현될 때 시각적 아름다움은 자연스레 따라 온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그는 현장의 광부생활을 거쳐 미술교육가의 삶을 살았다. “한 3년은 막장에 들어가 탄을 캐는 광부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부실한 갱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술도 마시고 잠도 자더라고요. 갱목이 무너질대는 ‘휘이’하고 휘파람 같은 소리가 납니다. 그때 빨리 대피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거지요.”

작가는 그때 이념과 결별하게 됐다고 한다. “행복한 삶만 삶이 아니다. 불행속에도 안정이 있고 산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라는 생각을 배웠습니다. 무조건 변혁과 투쟁을 외치는 운동권 사람들과 생각을 달리하게 됐지요.”

지금 그는 말한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념은 어린아이 눈물 한방울 만큼의 가치도 없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삶의 진정성이고 사람들 사이의 진실한 교감입니다. 지금 우리가 힘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식들은 서로 교감하는 세상에서 잘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런 세상을 위해 그가 하는 일은 미술 교육이다. 아직도 태백에 7곳이 남아있다는 탄광촌의 광부 아이들, 현지 회사원이나 관리직원들의 자녀들을 가르친다. 방학때는 초등학교 교사, 중고교 미술교사를 위한 10일짜리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어린아이의 눈과 마음을 살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 교육이다. 예술이란 인간의 삶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는 내용을 가르친다고 한다. 강건한 체격과 따스한 눈빛을 가진 그는 말한다. “이번 전시는 나의 과정, 내 삶의 궤적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내 삶을 보길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실존을 보일 뿐이요. 전시는 2008년 1월 6일까지 계속된다. 02-720-1020.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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