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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 논술, 학원만으론 안 돼” “체계적 교육과정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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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논술 담당 교사들이 지난 1일 강원도 횡성 민족사관고에서 통합교과논술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단계별 맞춤형 논술 프로그램을 마련해 학교가 주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심각섭, 김진익, 김형식, 백춘현, 김영민, 이기찬 교사.

서울·경기·강원·충청 지역 고교 교사 6명이 지난 1일 강원도 횡성 민족사관고에서 올해 본격 도입된 대입 통합교과논술고사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교과 내용의 교차 활용과 응용이 요구되는 통합교과논술을 지도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면서도 교과서를 바탕으로 문제를 출제하고 대학과의 정보 교류가 원활하게 이뤄지면 학교 논술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토론참석자

▶김영민 (서울 명덕외고)
▶김진익(수원 수성고)
▶김형식 (청주 대성고)
▶백춘현 (횡성 민족사관고)
▶심각섭(강릉 명륜고)
▶이기찬(의왕 명지외고) <가나다순>

 ▶김영민=고려대, 연세대 등이 발표한 논술 모의고사로 문제 유형을 예측할 수 있어 대비가 가능했다. 대학들이 논술 길잡이·우수 답안 사례 등을 제공해 학교에서도 논술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수험생들이 수능 후 불안한 마음에 학원으로 몰려 간 것은 학교가 고민할 대목이다.

 ▶김진익=올 초만 해도 통합교과논술 개념이 생소한 데다 자료도 부족해 학교들마다 혼란스러워했다. 그 여파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고 본다. 모 외고가 학원에 논술 교육을 맡긴 것은 공교육의 고민을 보여주는 사례다.

 ▶백춘현=글에 담겨 있는 표현·구조·내용을 단계별로 고루 익혀야 논술 교육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입시를 목전에 두고 그것을 한꺼번에 배우려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단기간에 승부를 내야 하는 학원에서도 그것은 해결하기 어렵다. 학원이 제공하는 배경지식과 예시답안을 외워 글을 쓰다 보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비슷비슷한 답안누가 좋은 점수를 주겠는가.

 ▶이기찬=해결책은 학교가 갖고 있다. 우리 명지외고에선 교사들이 대학의 수시논술 문제와 우수 예시답안을 분석해 공유했다. 오류를 줄이고 관점을 다양화하기 위해서였다. 학생들은 조별 토론을 통해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발표하면서 다양한 접근방식을 찾도록 했다.

 ▶김영민=우리 명덕외고에서도 국어·사회 교사 6명이 각자 하나의 주제를 집중 연구한 뒤 이론 강의·100분 토론·영화 감상 등의 프로그램으로 논술 수업을 꾸렸다. 토론 수업 반응이 좋았는데 어려움도 많았다. 참여 인원을 20명으로 제한했지만 소수가 토론을 이끄는 부작용이 생겼다. 또 교사들은 수업과 행정 업무를 함께하면서 첨삭까지 하느라 부담이 컸다.

 ▶심각섭=국어·윤리 교사들만 논술을 떠맡는 건 문제다. 통합논술은 여러 과목 교사들이 협력해야 하는데 학교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소수의 교사가 수백 명의 글을 첨삭하는 건 정말 벅찬 일이다. 내신 3등급 이하의 학생들에게 논술 공부를 유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무리다.

 ▶김형식=방과 후 교실을 통해 상위권은 기출 문제 풀이와 토론논술을, 중·하위권은 영화감상논술을 각각 개설하면 학교 논술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백춘현=1학년 때는 기초논술(논술 형식의 이해), 2학년은 교과논술(논술과 교과 내용의 접목), 3학년은 입시논술(실전 논술 익히기) 등으로 나눠 학년별 맞춤형 수업을 하면 효과적이다. 이때 글의 표현법·구조·내용 등을 교사들이 분담, 지도하면 좋다. 교사들의 교류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생명’을 바라보는 윤리와 생물의 관점이 다른데 교사 각자가 자기 입장만 강조하면 혼란이 생길 수 있다. 교과별 지식의 통합은 학원에서 순간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교과의 통합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 해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으로 논술을 쓸 수 있다.

 ▶이기찬=단계별로 어떤 자료를 제공하느냐도 중요하다. 논제가 흔히 요약 이해→반론 제시·비판→현실 적용·대안 제시 등으로 구성되므로 초급단계인 1학년생에게는 기출 문제 가운데 요약 이해 문제를 풀게 하는 방식도 괜찮다.

 ▶김진익=학교는 교육과정 3년 동안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장기 프로그램을 수립해야 한다. 1년은 교과와 매체를 활용한 논술, 2년은 교과 영역별 교차 논술을 각각 구상해볼 수 있다. 별도 논술 수업이 힘들다면 문과는 문학과 사회 시간에, 이과는 수학과 과학 시간에 논술을 지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수업을 논제 분석-토론-첨삭 3단계로 구성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김형식=대학의 협조도 중요하다.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려면 고교와 대학이 자료를 공유해야 한다. 서울대가 신입생의 논술 답안과 문제 제작 과정을 공개하고, 고려대가 논술백서를 발간해 학교 현장의 논술 지도에 많은 도움이 됐다.

 ▶이기찬=교사들도 논술 자료 연구개발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룹 스터디를 통해 각자의 교과 지식을 함께 나눌 때 학생들이 다양한 시각을 얻을 수 있어개성 있고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있다.

횡성= 박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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