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미국대선] 몰락하는 하워드 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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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인터넷과 젊은 자원봉사자들을 동원, 새 바람을 몰고 왔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가 이제는 민주당의 골칫거리가 됐다. 딘 전 주지사가 선두주자인 존 케리(매사추세츠) 상원의원에 대해 퍼붓는 독설이 본선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 측에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지금까지 벌어진 16개 주 선거에서 딘은 한곳도 승리하지 못했지만 "끝까지 남겠다"는 입장이어서 당 지도부는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좌충우돌=딘은 당초 위스콘신에서도 지면 사퇴할 생각이었다. 여론조사 결과는 위스콘신에서 케리 47%, 딘 23%, 존 에드워즈(노스캐롤라이나)상원의원 20%다. 위스콘신주의 딘 집회에는 많아야 수백명, 적으면 수십명의 지지자들만 나타난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승리의 희망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딘은 참모들과 상의하지 않은 채 FOX TV와의 인터뷰에서 "위스콘신 결과와 상관없이 계속 가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화가 난 딘의 선거책임자 스티브 그로스먼은 16일 "딘은 위스콘신에서 지면 사퇴한 뒤 민주당 승리를 위해 뛸 것"이라며 사임했다. 그는 케리의 캠프로 넘어 갔다.

◇민주당의 고민=딘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케리에 대해 '공화당인지 민주당인지 모를 사람''워싱턴 기득권 세력이고 로비집단을 대변한다''보톡스 주사를 맞은 게 아니냐'라고 공격했다.

공화당은 당장 '로비집단을 대변한다'는 부분을 포착해 케리에 대한 공격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미 대선에서는 자기 당 경선에서 만신창이가 되는 것과 본선에서의 승리 가능성이 반비례해 왔다. 그런 전례 때문에 민주당은 걱정하고 있다. 게다가 딘은 케리를 '엉터리'라고 여기고, 내심 경멸한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딕 게파트(미주리)의원과 웨슬리 클라크 전 나토사령관 등 사퇴한 민주당 경선주자들은 케리 선거운동 지원에 나섰지만 딘은 그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워싱턴 포스트는 16일 "의사인 딘은 자신이 정치인들과 달리 결과와 증거에 치중하는 실용주의자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선거운동은 감정적 동인에 의해 더 많이 좌우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딘의 몰락 배경에 대해선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결국 '스스로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이번 경선은 '딘의 참신성'과 '딘의 불안정성'이 맞섰고 초반에는 참신성이 부각돼 기세를 올렸지만 불안정성이 드러나면서 추락했다는 것이다.

이라크전에 반대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게 지나쳐 사담 후세인의 검거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물론 경선 경쟁자들에 대해서도 너무 심한 공격을 해대는 등 '극단주의자'의 면모가 부각된 것이 치명적이었다.

아이오와 당원대회(코커스)에서 패배한 뒤 괴성을 질러가며 했던 연설은 유권자들에게 "대통령감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줘 일거에 지지율이 폭락하는 사태를 빚었다.

'딘풍(風)'이 몰아닥치면서 아이오와주에는 3천5백여명의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었지만 정치 초년병들인 이들이 골수 당원들에게 미친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해 가을부터 너무 일찍 선두주자로 부각된 것도 딘에겐 마이너스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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