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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의 새 고민 ‘수입차냐, 국산차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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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수입차의 질주가 예사롭지 않다. 꼭 20년 전 국내시장에 처음 상륙한 수입차는 올해 ‘5의 벽’을 연달아 뛰어넘었다. ‘시장점유율 5%’. ‘연 5만 대 판매’를 어느 순간 돌파하더니 지난달에는 최초로 월 5000대 판매까지 넘어선 것. 내년에도 가속페달을 계속 밟아 연 6만~7만 대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이렇게 파이가 커지자 시장의 ‘질적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판매 상위 차종 리스트는 고가차 대신 중저가 차량이 포진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브랜드들도 속속 상륙하고 있다. 상류층·전문직 위주의 고객층도 일반 직장인층으로 확산됐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리스 상품도 봇물 터진 듯 나오고 있다. 시장이 급속히 대중화되면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일단 ‘규모의 경제’에 이르게 되면 수입차의 질주는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중산층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국산차냐, 수입차냐-.’
 
‘가시권’에 들어온 수입차

“가격이 화제가 되는 것 자체가 이미 수입차가 대중의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는 징표죠.”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윤대성 전무의 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수입차는 ‘특별한 사람’들이 타는 차였고 가격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가격이 비쌀수록 고급차라는 인식에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요즘 수입차 돌풍의 주역은 3000만~4000만원대의 ‘중저가’ 차량들이다. 올 들어 팔린 수입차의 석 대 중 두 대는 배기량 3000㏄급 이하였다.

업체들도 아예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워 마케팅에 나선다. 폴크스바겐의 2008년형 골프 2.0 TDI의 국내 판매가는 3120만원이다. 구형인 2007년형보다 500만원이나 내렸다. 올해 수입차 판매 1위 모델은 혼다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CR-V다. 이 차의 판매량은 지난해 1930대에서 올해 11월까지 3485대로 수직 상승했다. 인기 요인은 무엇보다 가격이다. 3090만원으로 국산 차량과 비교해도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다. 고급 브랜드들도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미 3000만원대 소형차 ‘마이 비(My B)’를 내놓았고, 볼보도 3350만원대 모델 ‘C30’을 출시했다.

기존 모델의 가격인하도 잇따르고 있다. BMW코리아가 5월 인기모델인 528i의 가격을 1900만원 내린 6750만원으로 책정한 것을 시작으로 볼보·폴크스바겐·GM·메르세데스 벤츠 등도 새 모델을 내놓으며 인하 대열에 동참했다. 7일에는 그간 고가 정책을 고수해온 도요타 렉서스도 2000만원가량 내린 최고급형 모델을 내놓았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BMW는 지난달 수입차 브랜드로서는 처음으로 월 판매량 1000대를 돌파했다. 신기록 경신의 주역은 가격을 내린 528i로 459대가 팔려나갔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지난달 기존 모델보다 1000만원 이상 내린 4000만원대 신형 C클래스를 출시하자 2주 만에 500대가 계약되기도 했다.

가격인하는 대부분 ‘옵션 조정’을 통해 이뤄진다. 폴크스바겐 골프 2.0 신형은 구형에 기본적으로 장착되던 가죽 시트를 직물 시트로 바꾸고 선루프도 없앴다. 중저가 차량이 쏟아지면서 ‘수입차는 무조건 풀 옵션’이란 한국에서만 통하던 공식이 깨지고 있는 셈이다.

중저가 수입차의 주요 고객층은 30~40대다. 해외 경험 등을 통해 수입차에 대한 정보가 많고, 그만큼 가격에도 민감하다. 닛산 관계자는 “인피니티 G35(4750만원)의 고객은 50% 이상이 30대”라고 말했다.

선택의 폭은 더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하반기에는 BMW가 3000만원대 모델인 1시리즈를, 아우디는 소형 해치백 모델인 A3를 내놓을 예정이다. 일본 대중 브랜드인 닛산과 미쓰비시도 국내 시장에 상륙한다.
 
공식수입 VS 병행수입

가격경쟁은 SK네트웍스가 공식 수입업체를 거치지 않고 해외 딜러로부터 차량을 직수입해 들여온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 회사는 직수입한 차를 공식 수입업체의 동급 모델보다 6~17% 싼 가격에 내놓았다. SK네트웍스의 공세에 7일 한국 진출 이후 한 번도 차값을 내리지 않았던 도요타의 렉서스까지 2000만원가량 싼 최고급형 모델을 내놓기도 했다.

SK 측의 ‘가격 거품’론에 공식 수입업체들은 ‘싼 게 비지떡’론으로 맞서고 있다. 차량이 다르니 가격 차이도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식 수입 차량들은 풀 옵션에다 한국의 안전·환경 기준에 맞춘 차”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SK네트웍스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차가 다르다고 주장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옵션들이 적용돼 있고 각각 가격이 얼마인지 밝히는 게 순서”라고 역공한다.

애프터서비스의 질도 논쟁거리다. 수입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요즘 차량들은 첨단 전자장치들이 많아 공식 업체들도 서비스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며 “하물며 병행 수입품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SK네트웍스 관계자는 “회사의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인데 허술하게 하겠느냐”며 “전국적인 정비망을 갖고 있는 데다 내년에 대규모 전문AS센터도 개장할 예정”이라고 맞받았다.

중고차 가격도 관심거리다. 3일 웨인 첨리 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은 “중고시장에 내다팔 때 병행수입 차량은 공식수입 차량의 40∼50% 정도밖에 값을 못 받는다”며 SK 측을 공격했다. 이에 SK 측은 “싸게 산 만큼 중고가도 어느 정도는 싸겠지만 공식 차량의 절반 가격이라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말했다.
 
리스의 유혹

업체들은 최근 경쟁적으로 리스 상품을 내놓고 있다. 월 19만원을 내면 수입차를 탈 수 있는 상품도 등장했다. 목돈이 부족한 30대 직장인들을 겨냥한 마케팅이다.

하지만 이런 상품은 상당수가 ‘금융 리스’다. 보통 3년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나머지 잔금(유예금)을 치르고 차를 구매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할부 구입과 차이가 없다. 매월 내는 리스료가 낮은 것은 유예금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였기 때문이다. 리스료 부담은 적지만 유예금에 대한 이자비용은 더 지불해야 돼 결국 총 구입 비용은 할부로 살 때보다 높다. 리스는 일반 직장인보다는 법인이나 자영업자들에게 유리하다. 리스료를 비용으로 처리해 세금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렌터카처럼 ‘허’자 번호판을 달지 않아 ‘내 차’라는 느낌이 난다는 것도 장점이다.
 
에쿠스보다 비싼 혼다 CR-V 부품

차량 가격만큼이나 신경이 쓰이는 게 유지비다. 유지비는 크게 세금과 보험료, 수리 비용으로 나뉜다. 세금은 수입차나 국산차나 차이가 없다. 배기량을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이다. 또 보험료도 3000만~4000만원대 차량이라면 특별히 부담은 없다. 수입차라고 특별히 보험료가 더 비싼 것은 아니다.

문제는 수리 비용이다. 중저가 차량이 쏟아지면서 부품 가격도 내려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산차보다 비싸다. 보험개발원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혼다 CR-V의 범퍼 교체 비용은 에쿠스 VS450의 3~4배에 달했다. 반면 CR-V의 차량 가격은 에쿠스의 40% 선이다. 이 때문에 수입차 업체들이 차량 가격은 낮추는 대신 부품 가격을 비싸게 받아 수익을 챙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부품 시장에도 변화가 예고돼 있다. SK네트웍스는 차제에 부품 가격도 10~15% 인하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KAIDA의 윤대성 전무는 “올 들어 시장이 팽창하며 차량 가격이 떨어진 것처럼 내년부터는 부품 가격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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