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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이름, 어머니-카렌 몬크리프의 ‘데드 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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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13면

여자,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딸이거나 어머니이거나 언니 혹은 누이.

소설가 천운영의 시네마노트

여기 다섯 여자가 있다. 잔혹하게 살해돼 벌판에 버려진 여자, 그 시체를 발견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방인 여자, 죽은 여자를 앞에 두고 15년 전에 실종된 언니라고 믿는 여자, 여자를 죽인 연쇄살인범의 부인, 죽은 여자의 어머니, 그리고 다시 죽은 여자. ‘데드 걸’은 죽은 여자를 둘러싼 산 다섯 여자의 불안한 이야기들이다.

이 여자들, 살아 있으나 산 것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웃어도 웃는 게 아니고, 울어도 우는 게 아닌 삶. 시체를 발견한 여자는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노모의 억압에 극도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며 그 때문에 사랑하는 방법도 알지 못한다. 15년 전에 실종된 언니에 대한 엄마의 집착은 남은 여동생의 삶을 짓누르며 고통 속에 살아가게 만든다. 왜 이들은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가. 왜 어머니들은 이토록 자식의 삶을 강력하게 지배하는가. 여기서 문득 히치콕의 ‘사이코’가 떠오른다. 죽어서도 강력하게 지배하는 어머니의 그림자.

‘데드 걸’에서 남자들은 거의 존재감이 없다. 하물며 여자를 죽인 연쇄살인범조차 행동의 반경을 알 수 없을 정도다. 연쇄살인범의 잔악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잔소리꾼 아내를 통해서이다. 그녀는 아내이기는 하지만 남편이 저지른 살인의 증거물들을 불태우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어쩌면 그녀의 남편이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은 어머니의 신경증을 내포한 아내 때문인지도 모른다.

죽은 여자가 집을 나오게 된 것도 아버지의 근친상간 때문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외면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있다.

그렇다면 불행의 원인이 어머니라는 존재를 향해 날아가야 하는가. 그러한 듯도 보이지만, 어머니를 향한 화살은 다시 희망을 품는다. 어머니야말로 희망이며 한줄기 희망의 빛이라는 것. 죽은 여자가 죽기 전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누군가의 연인이나 딸이나 언니였던 때가 아니라, 커다란 곰 인형을 안고 딸을 향해 달려가던 어머니였던 때다. 죽은 딸이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어머니도 죽은 딸이 남긴 딸과 함께할 때에야 죄책감에서 벗어난다.

손녀를 목욕시키며 부르는 노래, 암흑 속에서도 조용히 들려오는 노래, ‘You are my sunshine’이 오래도록 가슴에 사무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떠한 위협 요소들이 그 여자아이로 하여금 ‘데드 걸’처럼 살아가게 만들지라도, 지금 그 여자아이는 어머니로 하여금 살아 있게 만드는 빛 줄기이므로. 모든 어머니들, 모든 죽은 여자들, 그리고 모든 산 여자들에게 한 줄기 빛.


천운영씨는 2000년 소설 ‘바늘’로 등단한 소설가로 장편소설 『잘가라, 서커스』, 단편집『명랑』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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