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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잘될 것”이란 자신감이 주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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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07면

일러스트=강일구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실패는 병가지상사라고 했다. 문제는 최고경영자가 잘못을 하면 조직 전체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기업이 무너지고 직원은 거리로 내몰릴 수도 있다.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이 잇따라 부도를 낸 데는 급박하게 돌아가던 경제 환경 탓도 있지만 CEO의 실패도 적잖은 원인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래서 CEO의 실패는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CEO는 왜 실패하나

경영학에서는 CEO의 실패를 위험 관리(risk management) 차원에서 다루기도 한다. 기업은 늘 여러 가지 대내외적인 위험 요소에 직면한다. 그 가운데서도 CEO에서 비롯되는 내부 위험이 바로 CEO의 실패다.

그러나 CEO의 실패는 이론화하기가 쉽지 않다. 대개 CEO의 자질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자질이 모자라는데도 혈통이라는 이유로 CEO가 되면 기업이 흔들릴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30대 그룹의 한 대기업 2세 오너는 노는 걸 즐겼다. 어느 오너 2세는 전문경영인이 주거래 은행 간부들과 회식하는 자리에 전화를 걸어 “사장님, 별일 없으시면 저와 당구나 한 게임 치시죠”라고 말해 참석자들이 아연실색한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 기업은 외환위기 당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일본에서 몇 년 전 ‘실패학’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일본의 대기업들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대형 사고를 잇따라 일으키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실패의 원인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가운데 도쿄대 대학원의 하타무라 요타로(畑村洋太郞) 교수는 공학적 관점에서 실패의 유형과 메커니즘을 체계화했다. 하타무라 교수는 리더의 실패는 실무자들이 범하는 실패보다 세 배의 부담을 조직에 안겨준다고 분석한다.

그는 초창기 터전을 잡기 위해 함께 고생했던 창업 동지들이 회사를 떠나게 되는 기업의 성숙기일수록 실패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조직 전체를 조망하는 눈을 지닌 사람들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럴 땐 CEO가 자신의 역량 범위와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을 수 있는 실패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라고 그는 주문한다.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 노다 미노루(野田稔)는 실패의 사후 대처를 강조한다. 그는 “이미지화하지 못한 일은 관리할 수 없다”며 “우선 최악의 사태를 이미지화한 다음 그 대응책을 강구하는 게 더 큰 실패를 막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CEO는 실패 상황에 부닥쳐 무엇을 최저한으로 남기고, 무엇을 버리느냐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또 실패로 인해 기업이 위기에 처할 경우에는 CEO 주도로 평상시와는 다른 지휘명령 계통을 가동하라고 권한다. 실패에 대한 대응을 조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므로 지휘계통을 단순화하거나 위기관리 담당자에게 권한을 몰아주는 등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타미 히로유키(伊丹敬之)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CEO의 실패 책임을 CEO 한 개인으로 많이 돌린다고 주장한다. 경영 실패는 CEO가 상황을 잘못 인식하거나, 사람을 잘못 보거나, 성격적 결함을 보일 때 일어난다는 것이다. CEO에겐 가혹한 잣대인 셈이다.
실제 국내 대기업의 상당수는 CEO들의 잘못된 인식과 판단으로 과도한 투자를 하거나 문어발식 경영을 하다 부도를 냈다. 한보철강이나 진로 등 쟁쟁했던 기업들이 그런 식으로 무너졌다. 사람을 잘못 쓰는 바람에 망한 사례는 영국의 베어링이 대표적이다.

1995년 닉 리슨이라는 젊은 트레이더의 투기성 거래로 하루아침에 망했다. 문제가 드러나기 전까지 리슨이 가공으로 계상한 투자이익에 경영진은 흐뭇해했다고 한다. CEO의 성격 문제는 술집 종업원을 폭행해 물의를 빚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참고하면 쉽게 이해된다.

그러면 CEO가 그 같은 실패를 범하게 되는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이타미 교수는 CEO의 노령화, 성공의 추억, 조직에 대한 과잉 집착을 꼽는다.

첫째, 나이 든 CEO는 기력이 달리는 데다 지적 능력이 떨어져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쉽다. 총명이 흐려져 심하면 노추(老醜)에 빠진다. 둘째, 창업 당시의 성공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에 젖어 있는 경영자들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기 쉽다. 셋째, CEO가 조직에 대해 지나친 애착을 가지면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내 자식 같은 회사인데’ 하는 마음으로는 구조조정을 할 수가 없다. 질질 끌다 결단의 타이밍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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