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그리고,산 자도 말이 없었다(6) 『조선것들이라니! 사과한다고 하지 않았소.』 『사과해서 될 일이 아니에요.참 모르겠어요.조선사람들.자기들 멋대로예요.먹으라는 약을 시간 지켜서 제대로 먹기를 하나,운동하라는 시간에 운동을 하나.어떻게 생각해요? 조선사람으로서 조선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 좀 해 보세 요.』 우드득거리며 다시 명국이 어금니를 갈았다.한 걸음 비틀거리듯 앞으로 나선 명국이 이시다의얼굴을 노려보며 천천히 조선말로 내뱉었다.
『왜놈보다는 못 할 거 없다고 생각헌다.왜?』 『일본말로 하세요! 일본말!』 명국이 한걸음 더 이시다에게 다가섰다.화순은질질 끌려가듯이 명국의 팔을 움켜쥐고 있었다.명국이 왼손에 들고 있던 목발을 들어 이시다를 가리켰다.
『야,너!』 『야,노? 뭡니까 그건?』 『시끄러워,패 죽여버리기 전에…잘 알아둬.』 이를 부드득 갈면서 명국이 목발을 내렸다.그가 병원 유리창이 떨리게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조선놈이 너 보고 밥을 달래! 죽을 달래! 너희놈의 새끼들이 끌어다놓고 개돼지 부리듯 하면서.이것들이 정말 조선놈은 밸도 없어서 이러고 사는 줄 아는 거야 뭐야! 엉?』 『아이구 아저씨 왜 이러세요?』 『쪽발이놈 새끼들.훈도시 한장 차고 불알 덜렁거리며 사는 쌍것들이.게다짝이나 찍찍 끌면 단 줄 알어.야 이놈들아.내 다리 내놔라! 내 다리 내놔!』 얼굴을 감싸며 이시다가 아아아 하고 길게 비명을 내질렀다.명국의 큰 목소리와 이시다의 비명에 놀란 환자 하나가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불빛이 쏟아져 나오는 문앞에 선 그도 팔이 없었다.빈 소매를 허리춤에 찔러넣은 모습으로 그가 몇 걸음 걸어나왔다.
『왜 이런다요? 뭔 일이 터져 부렀소?』 그를 향해 명국이 소리쳤다.
『들어가 이 새끼야.
개×에 보리알 끼듯 끼지 말고.』 『앗따,그러셔.똥은 성님이싸시고 어째 나한테 화를 내신다냐.』 그의 등뒤에서 일본인 조수 마키노가 뛰어나왔다.때를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이시다가 병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명국이 소리쳤다. 『이 새끼는 뭐야? 너 뒈지고 싶어?』

ADVERTISEMENT
ADVERTISEMENT